전 언론이 "응급의료 위기"… 대통령은 현실부정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민족 대명절 추석을 앞두고 ‘응급의료 대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의료현장에서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로 인한 피해가 커지고 있다. 이달 초 열경련으로 쓰러진 두 살배기 여아가 응급실 11곳에서 이송을 거부당해 의식불명에 빠졌다는 사연이 전해졌다. 이 아이는 12번째 병원 응급실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으나 지금까지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2일엔 부산의 한 공사장에서 추락 사고를 당한 70대 노동자가 수술받을 응급실을 찾지 못하고 병원을 옮겨다니던 끝에 숨졌다. 5일 광주광역시에선 대학 교정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여대생이 직선거리로 100m가량 떨어진 대학병원 응급실 수용을 거부당한 뒤 다른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가 중태에 빠졌다.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방침 발표에 의료계가 거세게 반발하며 촉발된 의정 갈등이 7개월째로 접어들면서 ‘비상진료체계’가 이제는 한계에 부딪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의료계는 응급의료 시스템이 붕괴될 위기에 놓여 있다고 경고한다. 정부는 이런 현실을 애써 부정하는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은 8월29일 국정브리핑에서 “여러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일단 비상진료체계가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고 했다. 언론이 응급실 파행 운영 등 응급의료 위기를 고발하는 보도를 연일 내고 있지만 “응급실 의사가 부족한 게 근본적 문제”라며 의대 정원 확대의 당위성만 강조했다.


보건복지부는 이달 초 응급실 전문의에게 인센티브를 주고, 군의관과 공중보건의 등을 권역·지역응급센터 등에 대체인력으로 투입하는 내용의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파견된 일부 군의관이 현장 경험과 진료 역량 부족 등을 이유로 응급실 진료를 거부하고 복귀를 요청한 일이 알려지면서 곧장 실효성 논란에 휩싸였다. 복지부는 해당 대책을 발표하면서 “전체 응급실의 99%는 24시간 운영 중”이라는 반박을 넣었다가 “여전히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비아냥을 사기도 했다. 여당이 의정 갈등의 출구전략으로 제시한 여·야·의·정 협의체는 의사단체가 ‘2025년과 2026년 의대 증원 백지화’를 요구하면서 출범도 전에 삐걱거리고 있다.


추석 연휴가 다가올수록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가 지난 3~7일 일선 응급의학 전문의 5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긴급설문에선 92%가 “현 응급실 상황은 위기”라고 답했다. 응급의학의사회는 “평소 응급실 일일 내원환자 수는 2만명가량인데, 연휴에는 지난해 기준 3만명까지 증가했다”며 “이번 추석 연휴 동안 일평균 환자 1만명이 응급진료를 받지 못할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가족 중에 고령자나 어린아이가 있는 이들은 이번 추석 연휴 기간에 응급상황이 발생하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다.


윤 대통령은 추석 연휴 전 마지막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9일 “체불 임금과 민생 물가, 응급의료체계 점검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지시했다고 대통령실 관계자가 전했다. 이 말이 형식적 당부에 그치지 않으려면 그간의 진단이 잘못됐음을 인정하고, 이제부터라도 현장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의정 갈등 이전부터 응급의료 시스템은 늘 위기 상황이었다.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만 고수할 게 아니라 응급의료 현장의 요구는 뭔지,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은 없는지 등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여·야·의·정 협의체에 의사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설득에 나서야 한다. 의료계 역시 의대 증원 백지화만 주장할 게 아니라 정부·정치권과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편집위원회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