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주의의 화신’ 검사 윤석열의 탄생
이제는 모두가 알지만 대한민국 검사의 권한은 세계에 유례가 없다. 비정상적으로 막강한 권력은 사람의 정신을 파괴하고 인간을 타락시킨다. 검사 윤석열은 그러한 권력의 정점에 있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더 큰 권력을 차지하겠다며 검사를 그만두고 정치에 뛰어들면서 이렇게 말했다. “검찰 해체(는) …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법치를 말살하는 것이며, 헌법 정신을 파괴하는 것(2021년 3월 2일 국민일보 인터뷰).” 이는 집권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던 수사·기소 완전 분리 법안을 두고 한 말이다.
나는 이 짧은 문장에서 윤석열이, 민주주의 법치주의 헌법주의를 교묘하게 비튼다고 생각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윤석열은 어느 것 하나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세 가지를 간단히 말하자면 다수의 의사를 관철하는 민주주의는, 사회의 근본 가치인 헌법주의로 수정되고 보완되며, 이러한 과정을 거쳐 법치주의가 완성된다. 그러나 윤석열은 막강한 수사권을 가진 검찰이 법치주의의 현현(顯現)이며, 따라서 검찰의 수사와 기소 권한을 나누는 것은 법치주의 파괴라고 했다. 법에 무지하고 뒤틀린 사람이었다.
윤석열은 이미 이때부터 의회를 적대했다. 수사와 기소 분리가 법치주의 파괴라고 억지 주장을 서슴없이 말한 배경에는, 이를 추진하는 의회가 범죄자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평생을 검사로 일한 그는 비정상적인 검찰 권력을 이용해 수많은 국회의원을 구치소에 가두고 유죄를 받아내, 의회 밖으로 끌어냈다. 국민이 선출한 입법 권력이 헌법이 아닌 검찰에 무릎을 꿇었다. 마침내 사법농단 수사로 사법 권력까지 그의 손에 발가벗겨졌다. 이 때문에 법치주의를 검찰 아래 두는 발언이 가능했고, 윤석열 자신이 법치주의의 화신(化身)이라고 믿은 것이다.
권력이 아닌 국민이 위헌이라는 윤석열의 세계
대통령 윤석열은 자신의 권력을 극대화하려 헌법을 무시했다. 임기 초반 대법원장이 제청하는 특정 대법관을 거부한다고 했다. 하지만 현행 헌법에서는 물론이고 군사정권 시절에도 대법관 후보를 대통령이 거부한 적이 없다. 제청권자의 의사를 우선하는 것이 견제와 균형이라는 헌법 이념에 들어맞는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법기관 구성에 관한 이러한 헌법 무시는 윤석열 탄핵소추 이후 권한대행인 한덕수와 최상목이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은 일로 이어졌다.
윤석열은 오래전에 헌법이 경고한 위헌 행위도 아무렇지 않게 했다. 검찰이 윤석열의 배우자 김건희의 주가조작 혐의를 수사하지 않자, 국회가 통과시킨 김건희 특검법에 곧바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렇게 대통령이 가족에 대한 수사를 막기 위해 거부권을 쓰는 것은, 대통령이 배우자를 사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헌법적으로 정당하지 않은 일이었다. 헌법학은 정당성과 필요성이 부족한 법률안 거부권 행사는 탄핵소추 사유라고 경고해 왔지만 ‘법치주의의 화신’ 윤석열은 듣지 않았다.
마침내는 권력이 아닌 국민이 헌법을 어긴다는 궤변까지 주장했다.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정한 문서이고, 이 기본권을 침해할 우려가 큰 국가기관을 통제한다. 그래서 헌법소송 대상은 언제나 국가이다. 그런데도 윤석열은 국민이 헌법을 파괴한다고 했다. 가령 민주노총의 시위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발언이다. 돌이켜 보면 윤석열은 헌법이 기본권을 보장하더라도 실제로 보장할지는 대통령의 권한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그에게 헌법의 최종 판단자는 헌법재판소가 아닌 자신이었다.
병리적 충동이 낳은 12·3 불법 비상계엄
12·3 비상계엄 선포는 이렇게 자신이 법치주의의 화신이라고 믿은 윤석열의 병리적인 충동이 낳은 결과다. 그가 국회의장·대법원장 같은 전현직 입법·사법 요인을 체포해 감금하려 한 것도, 폭력으로 법치주의를 완성할 수 있다는 검사적(檢事的) 망상에서 비롯한 것이다. 윤석열은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국회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이 된 것입니다”라고 했다. 법치주의의 화신 윤석열에게는 자기 말에 반대하는 의회, 이들을 구속하지 않은 법원,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이 모두 괴물이었다.
대통령 윤석열은 국민을 잡아가 때리고 처단하려 했다가 헌법재판소에서 파면됐다. 시민은 기뻐 소리치고 눈물 흘렸지만 그뿐이다. 윤석열은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고 후회하는 표정도 짓지 않았다. 오히려 윤석열을 감싸고 위로하는 이들이 정권을 되찾겠다며 나서고 있다. 윤석열 임기 내내 위헌·위법적 행위를 도와온 한덕수 국무총리와 최상목 부총리는 여전히 헌법재판소의 경고를 무시하고 있다. 탄핵심판은 공권력의 헌법위반을 멈추고 예방하는 수단이라는데, 이처럼 현실에서는 작동하지 않고 있다.
교과서는 탄핵을 이렇게 설명한다. “탄핵은 국가기관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적정하게 권한을 행사하도록 하여 법치국가를 실현하고, 국가권력의 남용으로부터 기본권을 보장함으로써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기능을 한다(이효원, 헌법재판강의, 2022).” 지난날 대통령 박근혜는 헌법을 몰래 어겼다가 들통나 파면됐다. 박근혜의 근신으로 헌법의 규범력은 조금씩 살아났다. 윤석열은 헌법을 총칼로 망가뜨리고 파면됐다. 하지만 윤석열 세력은 여전히 당당하고 헌법은 망가진 그대로다.
윤석열 파면으로 민주주의가 회복됐다는 착각
윤석열 파면으로 민주주의와 헌법주의가 회복됐다는 것은 착각이다. 윤석열과 그 세력에게 우리는 여전히 괴물이다. 그들이 괴물임을 밝혀내야 우리가 사람이 될 수 있다. 지치지 말고 이 괴물과 싸워야 한다. 마지막까지 민주적이고 헌법적으로 싸워야 한다. 니체가 말한 것처럼,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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