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광고가 지역 언론을 통제하거나 지역 언론이 횡포를 부리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가운데 지역 언론에 적합한 새로운 정부광고지표를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15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지역 언론 2차 토론회: 2026년 지방선거와 지역 언론의 역할’ 토론회에선 현재 어떤 기준도 없이 지역 언론에 정부광고가 집행되고 있다며, 새로운 정부광고지표의 개발 필요성이 논의됐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난립할 소규모 지역 언론들을 막기 위해서라도 자체기사 비율 등을 정부광고 우선 배정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이날 발표를 맡은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실장은 “2023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정부광고지표 활용 중단을 발표한 이후 한 해 1조원이 넘는 정부광고가 어떤 기준도 없이 지금까지 집행되고 있다”며 “올해 4월 바른언론지역연대가 48개 지자체에 정보공개 청구를 해 받은 정부광고 집행 기준 자료에 따르면 집행 기준이 아예 없는 곳도 있었고 기준이 있더라도 지자체 홍보에 대한 기여도가 중요 기준이었다. 또 비판 보도로 지자체 이미지를 훼손하는 경우 등 정부광고 집행 배제 기준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동원 정책실장은 “이렇게 지역 언론이 정부광고를 통한 언론 통제를 지적하는 반면 지자체 공무원들은 지역 언론과 기자들의 횡포를 고발하고 있다”며 “그 배경에는 지역 언론사의 난립이 있다. 두세 명 수준의 소규모 언론사들이 국회 국정감사나 지방의회 행정감사, 지방선거철에 새로 만들어져 기관 출입 기자로 등록하며, 이들 중 일부는 정부광고를 노골적으로 요청하거나 지역 분양 광고나 정부광고가 들어올 때만 신문을 인쇄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부울경에서만 108개 매체에 정부광고 집행…5000만원 이하는 97개
김 실장이 부산·울산·경남을 사례로 삼아 정부광고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이 지역에만 108개 매체에 정부광고가 집행됐다. 구간별 집행액과 매체 수를 보면 한 해 동안 5000만원 이하의 정부광고가 집행된 매체 수는 97개였고, 1000만원 미만은 70개였다.
김 실장은 “70개 언론사가 이 지역 정부광고 총액의 3%인 1억8000만원을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며 “문제는 아무리 소액이라도 정부광고를 받은 지역 언론사는 그만큼 영향력 있는 언론사라는 지위를 부여받는다는 것이다. 이런 언론사의 대표·발행인·편집인을 겸하는 한 개인은 지역에서 지위와 인맥을 확보하고 각종 행사 및 교육 사업을 통해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한 ‘명패’로 언론사를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런 ‘명패’ 언론사들에 정부광고를 집행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역 언론에 적합한 정부광고지표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며 그 예로 자체기사 비율을 제시했다. 자체기사 비율은 이미 포털에서 지역 언론 입점 심사 기준이 된 지표로, 당시 뉴스제휴평가위원회는 일간지의 경우 자체기사 비율을 월 20% 이상, 주간지는 30% 이상으로 정하고 자체기사량 내 지역 자체기사의 비율을 70%로 제시한 바 있다.
김 실장은 “소규모 언론사를 고려하면 이 비율을 50%로 낮추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며 “이렇게 자체기사에 충실한 언론사에 ‘정부광고 우선배정 지역 언론사’의 지위를 부여하는 방안이 있다. 이 지표는 지역 자체기사 비중이 낮거나 거의 없으면서도 정부광고를 강요하는 지역 언론사에 대한 지원 금지의 근거로 쓸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자들도 지역 언론에 적합한 정부광고지표를 개발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박정연 언론노조 경남도민일보지부장은 “창원시청 기자실에 출입한 적이 있는데 연말연시나 선거철에 처음 보는 기자, 얼굴은 익숙하지만 명함은 또 바뀌어 인사하러 오는 이들로 즐비했다”며 “정부광고를 통한 지역 저널리즘 인증이 필요하다. 정부광고지표가 높은 기준에서 제대로 갖춰져야 해당 범위에 들지 않는 ‘무늬만 언론’ 같은 황색언론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신우열 전남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도 “지역의 많은 명패 언론사들이 정부광고를 통해 언론사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는 동안 사회가 그 필요성을 인정한 ‘뉴스민’, ‘뉴스하다’ 같은 언론사는 소수 언론인의 헌신과 소수 시민들의 선의 덕에 겨우 생존하고 있는, 이 아이러니야말로 한국 지역 언론의 개혁 방향을 드러내는 지표가 아닌가 싶다”며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정부광고 제도 개선은 현실적인 출발점이다.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언론, 민주주의에 실질적 기여를 하는 언론이 지속 가능한 구조를 갖추도록 지원하는 것이 정부 언론 진흥 정책의 기본 방향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를 공동 주최한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역 언론 관련해서 정비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손을 놓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언론노조, 언론재단, 문체부 등과 신속하게 팀을 꾸리겠다. 여야 간에 정쟁이 될 만한 사안이 아니니까 1월 안에 서둘러서 제도 정비를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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