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자협회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16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 기자실을 개관했다. 기자실 명칭은 ‘서재필방’으로 1896년 독립신문을 창간한 서재필 박사의 뜻을 기려 이름을 지었다.
기자협회와 언론재단은 이날 프레스센터 18층 서재필방에서 개관식을 개최하고 현판 제막식을 거행했다. 박종현 기자협회 회장은 “기자실을 만들게 된 결정적 계기는 특검이었다”며 “지난해 여름 KT 광화문빌딩 앞에서 김건희 특검팀을 취재하던 후배들이 뙤약볕 밑에서 일하다 쓰러지는 일이 있었다. 언론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기자들이 제대로 취재할 공간이 부족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선배들이 나서서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이번 기자실 개관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효재 언론재단 이사장도 “프레스센터는 오랫동안 우리 언론의 상징적 공간으로 자리해 왔지만 정작 기자들이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하며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며 “이번 기자실 개관은 이러한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언론인들이 보다 안정적이고 편리한 환경에서 취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기자협회를 비롯한 주요 언론단체 소속 기자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적 취재 인프라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앞서 1월 기자협회와 언론재단은 프레스센터 내 기자실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언론재단은 기자실 운영에 필요한 경비를 지원하며 기자협회는 기자실 운영 및 관리 등의 책임을 지기로 합의했다.
서재필방은 약 70석 규모로 책상과 전화 부스, 브리핑룸, 라커룸, 복합기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췄다. 기자협회와 한국신문협회, 한국방송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주요 언론단체 소속 회원사 기자라면 누구든 이용 가능하며,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된다.
서재필방 로고는 서재필 박사의 친필 서체에 근거해 제작됐다. 서체 끝에는 낙관 형식을 차용해 한자로 ‘기록할 기(記)’ 자를 넣어 기자실이라는 상징성을 부여했다. 서재필방 소개 문구를 작성한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올해가 독립신문 창간 130주년, 신문의날 제정 70주년”이라며 “서재필 선생은 우리 언론 정신의 근본인 분이다.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객관성을 강조했고, 최초의 한글 신문인 독립신문을 만들어 한글 공용화에 큰 업적을 세우셨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방문신 방송협회 회장, 이태규 편협 회장, 조성은 언론노조 수석부위원장, 기자협회 회원사 지회장 등 주요 언론단체 인사 50여명이 참석했다. 기자들을 대표해 소감을 밝힌 최지숙 연합뉴스TV 지회장 겸 기자협회 부회장은 “현장을 지키는 기자들이 여러 가지 애로사항을 많이 겪고 있는데, 서재필방이 그런 어려움에 대한 위로의 공간이 되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 본다”며 “이 공간이 소통과 치유의 공간이자 안식처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후배 기자로서 이런 공간을 마련해 주신 선배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서재필(Philip Jaisohn; 1864.1.7.~1951.1.5.)
서재필 선생은 언론인 개화사상가 혁명가 독립운동가 군인 의사 정치가 등으로 여러 분야에서 활동한 근대사의 선각적인 거목이었다. 87년 생애에 국내와 일본 미국을 넘나들면서 우국충정에 넘치는 거대한 발자취를 남겼다.
선생의 여러 방면에 걸친 업적 가운데 가장 빛나는 분야는 언론이었다. 독립신문은 한국 언론의 정신사적 원류(源流)이고 선생은 한국 언론의 비조(鼻祖)이다. 1896년 4월 7일 최초의 민간지 독립신문을 창간하여 민주주의 사상을 널리 확산시키고 정치와 사회개혁의 방안을 제시하였다.
선생의 언론관은 한말에서 일제 강점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초월하여 한국 언론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불편부당 편벽되지 아니하며 나라의 주권이 국민에 있음을 깨우쳐 주었고 이는 후세 언론의 귀감이 되고 있다. 1957년부터 독립신문 창간일인 4월 7일을 '신문의 날'로 정한 것은 후배 언론인들이 선생의 가르침을 이어받기로 뜻을 모았기 때문이다.
독립신문은 한글의 공용화(公用化)에도 획기적으로 기여했다. 개화사상을 전파하고 정부와 국민의 가교역할을 하는 신문 제작을 위해서는 읽고 쓰기 편한 우리 한글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선생이 우리 언론사에 끼친 영향 가운데 또 하나 높이 평가할 부분은 민간신문 시대의 문을 열어주었다는 사실이다. 독립신문 창간 2년 후인 1898년에는 미일신문 뎨국신문 皇城新聞과 같은 일간지가 연이어 창간되었다.
언론이 험난한 가시밭길을 헤치면서도 독립과 민주화 산업화를 선도하고 국가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었던 것은 서재필 선생의 독립신문이 마련한 터전이 자생의 토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서재필 방'으로 이름 붙인 이 공간은 언론의 자랑스러운 전통을 계승한다는 의미와 함께 언론의 무거 운 책임도 잊지 않겠다는 자세로 언론인들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마당이 될 것이다.
글 정진석 한국외국어대학교 명예교수
그림 박득순
강아영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