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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적 문제제기 뿐 정책은 없다"

노 대통령 국정토론회 발언 관련 언론계 회의적 시각 팽배

박주선 기자  2003.08.1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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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참여정부와 언론



참여정부 출범 6개월. 정부와 언론의 ‘건강한 긴장관계’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일부에서는 언론개혁에 대한 대통령의 발언만 있었을 뿐 정책이 없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지난 6개월간 참여정부의 언론정책에 대한 언론계의 평가와 전망을 들어본다.





“표현방식 문제있다”



현재까지 나온 노 대통령의 언론 관련 발언은 언론에 대한 ‘타협’보다는 ‘전면전’으로 읽힌다. 특히 지난 2일 열린 참여정부 제2차 국정토론회에서 노 대통령은 “‘공정한 의제, 정확한 정보, 냉정한 논리’가 언론의 기능인데 제대로 못하고 있다” “특권에 의한 횡포는 용납할 수 없다”면서 비판적인 언론관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이날 노 대통령의 발언은 참여정부와 갈등 관계에 있는 일부 보수 신문뿐만 아니라 한겨레를 제외한 모든 신문으로부터 정면 공격을 받았다. 4일자 신문들은 일제히 사설을 통해 ‘대통령의 편협한 언론관’(경향) ‘대통령 또 언론탓인가’(대한매일) ‘국정난맥 언론탓인가’(문화) ‘왜 언론 모두를 적으로 모는가’(한국)라며 노 대통령의 언론관을 비판했다. 그러자 청와대는 8일자 ‘청와대브리핑’을 통해 “국민에 의해 선출된 정부가 일부 언론 보도가 불공정하다거나 편파적이라고 밝히는 것은 왜 질타받아야 하나”라며 맞받아쳤다.

결과적으로 노 대통령의 발언은 언론과의 전선을 확대시켰고 일부에서는 불필요한 갈등을 양산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김창룡 인제대 교수는 프레시안 기고에서 “노 대통령의 언론 보도에 대한 불만은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분명히 있지만 그 표현방식과 빈도, 대응방식에는 문제가 있다”며 “노 대통령이 요구하는 언론의 ‘공정한 의제, 정확한 정보, 냉정한 논리’는 공개적인 불만 제기 방식으로는 개선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기자협회 창립기념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0.8%가 현 정부와 언론의 관계를 ‘불필요하고 감정적인 긴장관계’라고 답한 것도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언론·정부 모두가 책임



참여정부가 내세운 ‘언론과의 건강한 긴장관계’ 대신 ‘소모적 갈등관계’가 확산된 원인은 무엇일까. 일부에서는 정부의 언론관련 발언보다는 언론의 보도 태도에 비판의 무게를 싣는다. 한 청와대 출입기자는 “노 대통령의 국정토론회 발언은 언론과 타협을 하지 말자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보인다”며 “정부의 잘못을 사실보다 100∼200% 부풀려 보도하는 언론이 갈등의 원인 제공자”라고 지적했다. 기자협회 여론조사에서도 정부에 대한 일부 언론의 보도가 지나치게 감정적이라는 데 대해 응답자의 70.4%가 동의했다.

그러나 참여정부의 언론 관련 발언 방식 역시 소모적 갈등을 자초한다는 지적이 만만치 않다. 한 신문사 논설위원실장은 “사실을 왜곡 보도하는 일부 언론에 문제가 있다”면서도 “대통령이 자주 앞에 나서서 언론의 문제를 말하는 것은 불필요한 오해를 부추긴다”고 말했다. 이재국 언론노조 신문개혁특위 위원장은 “유감스럽게도 양측이 다 문제를 안고 있다” 며 “일부 신문권력들이 기득권 보호와 참여정부 흠집내기 차원에서 부도덕한 보도행태를 취하는 것도 문제지만 언론개혁의 법제화 노력 대신 감정적 화법으로 대응하는 노 대통령 역시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정책차원 접근 부족 지적도



한걸음 나아가 출범 6개월을 앞둔 참여정부의 언론정책에 대한 평가는 “대통령의 감정적 문제제기만 있고, 언론에 대한 철학과 정책이 없었다”는 쪽으로 모아진다. 임영호 부산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참여정부는 언론과 필요 이상의 갈등을 만들었지만 실질적으로 정책 차원의 접근은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오보 대응이나 기자실 개방 등은 정부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일뿐이고, 언론정책에 대한 큰틀의 밑그림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양문석 언론노조 정책전문위원은 “노 대통령의 언론개혁 관련 주장은 대부분 청와대, 정부여당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 때만 나왔다”며 “노 대통령이 진심으로 언론개혁에 대한 철학과 의지가 있는지에 대해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반론도 있다. 김영욱 언론재단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할 수 있는 언론정책이 많지 않다”며 “오보 대응, 취재시스템 개선, 신문고시 개정 등 일련의 정책을 볼 때 현 정부가 언론에 대해 말만 할 뿐 정책이 없다는 지적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여소야대의 정치 지형 역시 정부로서는 부담스러운 요인이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정간법 개정은 추진해야 하지만 현 여소야대 지형에서는 논란만 일으킬 뿐”이라며 “법개정은 내년 총선에서 여소야대 지형이 바뀌고 난 뒤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원회 구성 제기되기도



그렇다면 현 단계에서 정부의 역할은 없을까.한 신문사 노조위원장은 ‘어항론’을 꺼내면서 이를 반박했다. 그는 “정부는 좁은 어항 속에서 물고기들이 싸우고 있는데 새 어항을 준비하거나 상호충돌을 중재하지 않고 몇몇 큰 물고기를 쫓아내려는 안티 테제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지상파와 지역방송, 중앙지와 지방지, 중앙지 내 거대신문과 군소신문 등 다양한 영역의 문제에 대해 정부가 통합적으로 바라보고 합리적으로 조정하지 못한 채 대통령이 불쑥불쑥 언론에 대한 문제제기만 내놓는 것은 언론개혁에 대한 ‘의지’ 부족의 방증이라는 것이다.

언론 발전을 위해 언론 현안을 논의하는 위원회 구성도 한 방안으로 제기된다. 이는 다양한 매체가 균형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선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데서 출발한다. 아울러 인터넷 매체의 위상, 매체간 갈등, 위성방송의 지상파 재전송 문제 등 급변하는 매체 환경을 뒷받침할 수 있는 법제가 마련돼야 한다는 문제의식에도 기반하고 있다. 영국의 왕립위원회, 미국의 허치슨위원회 등이 참고할 만한 모델이다. 국내에서는 지난 2000년 국회의원 31명이 국회의장 직속의 언론발전위원회 설치 법안을 발의했지만 여야간 정쟁으로 입법화에는 실패한 바 있다.

언론계 한 인사는 “언론개혁에 성공하려면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하다”며 “언론계, 시민단체, 학계 등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논의할 수 있는 한시적인 미디어발전위원회(가칭) 설치가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양한 미디어의 균형적 발전은 국가적 의제인 만큼 대통령 직속 위원회 설치가 가능하다”며 “신문개혁은 미디어발전위원회에서 한 분야로 논의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적극적 언론정책은 미지수



그러나 참여정부가 적극적인 언론정책을 펼칠지는 미지수다. 이해성 청와대 홍보수석은 “노 대통령의 국정토론회 발언은 언론과의 건강한 긴장관계에 대해 재차 강조한 것이지 후속 정책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라며 “언론개혁을 위해 대통령 직속 위원회 설치 등 정부가 나서면 언론탄압이라는 오해를 살 수 있고, 생산성이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문화관광부 문화산업국 관계자는 “언론 관련 영역에서 행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며 법제 개선은 국회의 몫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노 대통령은 국정토론회에서 “아주 가까운 참모들로부터 ‘언론과 싸워서 뭐하겠냐’,‘이길 수 있겠느냐’는 얘기를 끊임없이 들어왔다”면서 대통령과 참모들의 언론에 대한 ‘고민의 차’를 드러내기도 했다. 게다가 일부 보수 신문과 다수 야당의 공세는 참여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

박주선 기자 sun@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