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희망 없음’ 한마디로 요약된다. 지역별로 기자의 연봉수준이나 복리후생 등이 천차만별인 것은 사실이지만 전반적으로 지방지 기자들의 언론인으로서의 자존심이나 자신감이 과거에 비해 크게 약화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강원도에서 10년째 기자생활을 하고 있는 Y기자(40)는 자신의 봉급수준이 다른 업종에서 일하는 대학 동기들보다 열악한 것은 물론이고 신문사의 복리후생 문제는 말도 꺼내기 싫다고 손사래를 쳤다. 10년전 공채로 입사했을 때는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해 높은 경쟁률을 뚫고 기자가 됐건만 이제 남은 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 뿐이라는 것. 그는 “아이들이 커가는 것과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정비례해 종종 가슴이 털컥 내려앉기도 한다”고 말한다.
IMF 직전인 지난 1997년 초 기자가 된 호남권의 K기자(32)는 신문사 입사 이후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IMF의 칼바람이 서서히 불어닥치면서 이례적으로 3명의 수습기자 가운데 2명이 탈락한데 이어 경영이 어려워진 회사가 직원을 상대로 ‘희망퇴직을 받는다’ ‘정리해고를 한다’면서 조직 슬림화를 단행해 선후배간에 쓰디쓴 소주 한잔도 나누기 전에 ‘이별’의 아픔을 경험했기 때문.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할 때는 선후배 기자들이 다른 직종과 달리 ‘유난히 끈끈한 동료애’로 뭉쳐있다는 말을 들었던 K기자는 희망퇴직과 정리해고 이후 신문사에 남은 것은 상호불신과 원망, 미움 뿐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는 “지금은 신문사 경영이 IMF 때보다 더하다고 하니 회사 분위기 상상되죠?”라고 반문했다.
대전 D일간지에서 지난 5월 민간 통신사로 이직한 Y기자(31)는 5년간 신문사 근무로 얻은 건 “빚 밖에 없다”며 씁쓸해했다. 기본생활유지가 안되는 명목상의 급여는 단지 ‘활동비’라고 밖에 할 수 없었고 사주들이 갖고 있는 신문 마인드는 기자들이 갖고 있던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짓누르는 상황이 일쑤였기 때문. Y기자는 “열악한 근무여건이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지역의 우수인력 중 누구도 신문으로 오지 않을 것”이라며 “지방언론육성법 제정 등 지역언론을 살리기 위한 발판이 준비되는 이때에 지역의 신문사 사주들은 경영정상화를 통해 지역의 우수인력을 충원할 수 있는 기반을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대적으로 ‘괜찮다’는 평을 받고 있는 영남권 일간지에서 15년을 근무하고 있는 J기자(47)는 젊음을 모두 불사른 지금 문득 이곳을 떠나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불안감을 갖는다고 말했다. 미래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언론계의 상황은 아직 기자로서 꽃도 피워보지 못한 젊은 후배들의 이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실제로 며칠전 같은 이유로 후배를 떠나보낸 그는 “지방 기자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비전이 없다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미래가 없다는 상황은 지방지 기자들을 끊임없이 ‘이직의 강’으로 내몰고 있다. 이러한 이직은 기자 스스로 결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회사측에 의해 강제로 추진되기도 한다. 지난 2001년 3월 소속기자 13명에 대한 정리해고를 단행한 광주의 한 신문사는 2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11명의 해고기자들과 행정소송을 진행중이다. 11명의 기자들은 지난해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승소해 복직이 되는 듯 했으나 회사측이 다시 행정소송을 제기해 또 다시 지루하고 힘겨운 그들만의 ‘명예회복 전쟁’을 치르고 있다. 해고 이후 언론재단 광주사무소 미디어강사로 활동하다 최근 일반 업체 홍보담당자로 자리를 옮긴 L 전 기자는 “회사측의 당시 해고는 뚜렷한 기준 없이 사주의 입맛에 따라 자행된 부당 해고였던 만큼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려도 끝까지 싸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기자직을 그만 두는 사례도 줄지 않고 있다. 전북권 지방지의 경우 지난 1년동안 회사를 떠난 기자가 적게는 4∼5명에서 많게는 10여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떠나는 이유는 △전직 △대학원 진학 △이민 △언론계에 대한 염증 등 다양하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또 일부는 계속해서 새로 생겨나는 신문사로 자리를 옮기기도 하지만 신생 신문사 역시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직업을 잃는 악순환도 계속되고 있다.
충청권의 J일간지에서 근무하다 지금은 회사 경영상 휴간으로 M건설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L(28) 전 기자는 대학 다닐 때 꿈꾸던 기자가 되기 위해 각고의 노력 끝에 신문사에 입사했다. 그러나 신문사는 경영상의 이유로 임금을 60%만을 지급했으며 그는 회사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3년 동안을 근무했다. 그러나 그렇게 인내하며 기다리던 회사가 결국 휴간되자그는 퇴사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시절 꿈이 단지 꿈으로 끝맺음되고 만 것이다. 그는 “지역의 타 신문사에서 근무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더 이상 현실의 고통을 감수하며 일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새로운 인력 충원 없이 지속적인 인력 감소를 겪다보니 지방지 기자들의 노동강도는 가히 살인적이라 할 만하다. 3∼4년전만 해도 광주지역 체육부의 인력구성은 △데스크 △프로야구, 축구 등 엘리트체육 △시·도체육회, 아마츄어 체육 △레저, 여행 담당 등으로 나뉘어 기자가 최소 3∼4명이었으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기존의 체육부는 다른 부서와 통합돼 예컨대 ‘문화체육부’ 등으로 명칭이 바뀌었고 오로지 단 1명의 기자가 체육을 전담하고 있다. 더욱이 편집과 교열인력이 감소하는 바람에 광주 한 신문사의 경우 취재기자 한명이 전체 체육기사 작성을 전담하는 것은 물론 오후 5시쯤 귀사해 체육면 편집과 교열, 그리고 2주에 한번씩 ‘레저 특집면’까지 담당하는 ‘불가사의’한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은 호남권 지방지 기자들의 의욕상실로 이어지기 마련. 기자들의 의욕상실은 공교롭게도 ‘이달의 기자상’ 추천작 수에서도 극명히 드러나고 있다. 영남권 신문사의 경우 지속적으로 추천작을 기협측에 제출하는 반면 호남권은 거의 출품조차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달의 기자상’을 받고 싶은 마음이 이 지역 기자들에게는 없는 것일까.
근래에 들어 왜 호남지역 신문기자들이 ‘이달의 기자상’에 자신의 기사나 보도사진을 잘 출품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기자 경력 12년차의 K기자는 “그것은 알몸을 가릴 수 있는 기본적인 내복도 제대로 없는 사람한테 왜 액세서리를 구입하지 않느냐고 묻는 꼴”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의욕상실과 무희망이 켜켜이 쌓였더라도 남아있는 사람들의 지방지에 대한 애정은 뜨겁다.
“가만히 생각해 봤죠.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아무리 곰곰히 생각해 봐도 신문만드는 일이더라구요. 참 내… 많고 많은 기술 중 하필이면 그 기술을 배웠을까? 헛헛… 하지만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지요. 안 그렇습니까?”
‘남아있는 사람들’은 공허한 웃음을 하늘에 날려보다가도 언제부턴가 지방지 자체가 ‘구악’으로 매도되는 분위기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감추지 않는다.
광주의 한 편집국장은“요즘 지방신문사는 동네북”이라며 “언론을 전공한다는 지방대 교수도 씹고, 시민사회단체도 씹고, 자치단체 공무원직장협의회도 씹고 심지어 중앙언론사도 씹고… 정말 지방지 편집국장도 못해먹겠다”며 노무현 대통령의 말투를 흉내내기도 했다.
‘씹는다’는 과격한 용어를 사용하긴 했지만 그의 말 속에는 지역문화를 지켜내고, 지역 환경보전에 나서는 등 지방지의 순기능이 얼마나 많았는데, 지방지 전체를 ‘악’으로 매도하느냐는 일부의 분위기에 대한 섭섭함이 진하게 배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