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체비평프로그램의 신호탄이었던 MBC ‘미디어비평’이 2년의 세월과 함께 100회를 넘어섰다. KBS도 지난 6월부터 황금시간대에 ‘미디어포커스’를 편성하고 상호 매체비평 영역에 본격적인 도전장을 냈다. 뿐만 아니라 언론인권센터가 기획·제작하고 시민방송(RTV)이 편성하는 ‘김영호의 언론바로보기’와 ‘EBS 미디어비평’(EBS ‘지금은 시청자 시대’의 한 코너)도 각각 ‘인권’과 ‘교육’이라는 특성을 살린 차별화된 프로그램으로 호평을 얻고 있다. 특히 EBS는 오는 10월 개편에서 독립적인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을 신설할 계획이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매체비평프로그램 전성시대가 올 것인가. 4개 방송사 제작진들을 만나 매체비평프로그램의 현주소와 나아갈 방향 등을 들어봤다.
“MBC ‘미디어비평’이 지난 2년간 언론의 상호 침묵과 카르텔을 깨는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본다. 그렇지만 시청자들이 쉽고 친숙하게 받아들이기에는 내용이 어려웠다는 지적도 있었다. 100회를 넘기면서 많은 고민을 했고, 현장 취재 강화, 친절한 비평 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중성’과 ‘전문성’, 서로 상충되는 이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조화시키고 균형을 잡아나갈 것인가? 매체비평프로그램은 언론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면서도 일반 시청자들이 언론환경을 이해하고 언론의 문제점을 알 수 있도록 교육하는 측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
‘전문성’ ‘대중성’ 두 마리 토끼 잡기
그러나 현실적으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는 어렵고, 제작진들은 ‘전문성’에 더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MBC ‘미디어비평’ 김현주 부장은 “매체비평프로그램은 시청률에만 매달릴 수 없는, 전문성을 포기하고 대중성을 쫓기 힘든 프로그램”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KBS ‘미디어포커스’ 김양수 부장도 “처음부터 시청률이 낮더라도 의식하지 않겠다고 말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대중성과 전문성을 균형있게 확보하는 일이 원칙적이고 장기적인 고민이라면 아이템 선정은 매주 닥쳐오는 골칫거리다. “생각보다 아이템이 널려있지 않다”는 것. MBC ‘미디어비평’ 앵커를 맡고 있는 신강균 차장은 이에 대해 “매체비평은 기본적으로 잘못된 보도가 있을 때 가능한데, 각 언론사 기자들이 검증한 보도마다 얼마나 오보가있을지 다시 감시하고 비평한다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KBS ‘미디어포커스’ 김찬태 차장은 “시의성이 있어야 하고, 시청자들이 어느 정도 기본 정보와 지식을 갖고 있다는 전제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여기에 부합하는 아이템을 찾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RTV ‘김영호의 언론 바로보기’의 경우 언론과 인권이라는 부분으로 주제를 좁혔기 때문에 소재 발굴이 더 어려운 경우다. 진행자 김영호 미디어포럼 회장은 “인권과 관련된 아이템을 찾기가 쉽지 않다. 또 내용이 전문적이라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면서 “위성방송이기 때문에 시청률이 낮아 아쉽다”고 덧붙였다.
아이템 선정·인터뷰 요청 가장 힘들어
기회 균등과 반론권 차원에서 해당 언론사와 기자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해도 거부하는 경우가 아직 많다. 이에 대해 제작진들은 “자신들의 보도가 문제점이 있다는 것 자체를 수긍하지 않기 때문에 인터뷰는 물론이고 직접 출연해서 반론을 하거나 토론해 보자는 제안도 받아들이질 않는다. 기자들 자체가 지적을 받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EBS 지금은 시청자시대’ 윤문상 시청자팀장는 “비판의 대상이 되는 출연자가 약속을 깨고 출연하지 않을 때 난감하다. 비판 대상자의 반론을 해줄 사람도 출연시킬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우리나라 언론은 반론권을 주는 듯 하지만 사실은 출연 자체가 이미 지적을 인정하는 게 된다. 제작진의 시각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히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매체비평프로그램을 바라보는 언론계 안팎의 시선도 여전히 곱지 않다. 내부 동료들의 불만, 신문 특히 조·중·동만 공격한다는 냉소적인 반응 등이 그렇다. 그러나 제작진들은 비평 기준과 잣대가 모두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음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비평의 기준은 신문과 방송이 다르지 않고 외부와 내부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아무리 객관적으로 동일한 잣대를 적용해도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다양한 시각이 상호 비난식의 소모적인 논란으로 그치지 않고 생산적인 토론과 논의로 수렴되는 것이다”(MBC 김현주 부장)
“언론개혁, 사회정의 차원에서 자사 뉴스를 포함한 모든 매체를 성역 없이 비평하고 똑같은 잣대로 지적하고 있다. 우리의 역할은 남보다 한꺼풀 더 벗겨서 접근하고뒤에 숨겨진 진실과 배경을 따지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수긍하고 납득하는 때가 올 것이다”(KBS 김양수 부장)
정도에 대한 고민 부족이 가장 큰 문제
그렇다면 언론을 상호 비평하는 매체비평 프로그램 제작진들이 생각하는 한국 언론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일까? KBS 김양수 부장은 “단선적으로 접근하는 기사가 너무 많은 것 같다”고 지적한다. “복선과 감춰진 배경을 고민하면서 다양한 측면을 살펴야 하는데 눈에 보이는 면만 처리하는 것이 습관처럼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MBC 김현주 부장은 “언론의 정도와 원칙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며 “의도적 오보, 사실확인 부족, ‘아니면 말고’식 보도, 편견으로 일방을 몰아붙이는 보도 등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언론의 정도 걷기, 언론 윤리와 사소한 관행 문제도 검토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김영호 미디어포럼 회장은 “의도성 있는 편파보도가 가장 심각한 문제”라며 “신문은 자본과, 방송은 정부와 너무 가깝다. 언론비평의 활성화가 곧 언론개혁이기 때문에 매체비평의 활성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매체비평프로그램의 확산은 상호 비평과 검증 구조가 자리를 잡고, 독자·시청자 주권 향상, 미디어간 균형발전 등의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러한 매체비평프로그램이 활성화하기 위해 제작진들은 시청자들과 동료들의 ‘관심’을 주문하고 있다. KBS 김양수 부장은 “미디어와 미디어비평에 대한 관심만 있으면 충분하다”며 “시청자와 시민단체, 동료들이 프로그램에 관심을 보이면 제작진들이 더 정성스럽고 치밀하게 프로그램을 만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사와 기자들이 자신의 잘못과 지적을 수긍하는 문화, 열린 상호비평과 감시 기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또 프로그램을 만든 이상, 좋은 시간대에 편성해 많은 시청자들이 볼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수긍’하는 문화, 사회적 ‘관심’ 필요
MBC 신강균 차장은 “매체비평프로그램의 역할은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존재가치를 끊임없이 일깨우는 것”이라며 “프로그램이 활성화하려면 언론사 내부의 감시와 비평기능, 서로 견제하고 지적하는 분위기가 격려되는 조직 문화, 자신의 잘못은 수긍하는 태도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 차장은 “KBS는 방송 시간대와 제작 여건이 좋아 부럽다”며 “‘미디어포커스’가 잘돼서 미디어비평 시장이 커지고 사람들이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을 찾아서 보는 ‘유행’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매체비평프로그램을 통해 제기된 각종 언론 이슈와 비판들이 보다 활발하고 생산적인 논쟁과 토론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KBS 김찬태 차장은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잘못을 지적하면 수긍을 하든 항의를 하든 반응을 보이고 직접 출연해서 토론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별 반응이 없다. 미디어저널리즘의 질적 발전을 추구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프로그램인 만큼 토론과 논쟁이 활발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MBC 김현주 부장도 “방송사마다 상호비평 통로를 마련한 이상 공짜 취재 등 관행적으로 되풀이됐던 문제까지 공론화시켜 발전적인 토론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