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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주·장] 시험대 오른 선거보도

기협 총선보도준칙을 가슴에 명패로 달고 다니자

편집국  2000.11.14 13:2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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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협회에서 16대 총선 보도준칙을 만들었다. 그 내용을 개략하면, 시민의 올바른 선택을 돕기 위해 공정하고 유익한 보도를 하고, 지역주의 배제와 바른 선거 풍토 정착에 앞장서자는 것이다.



기자들이 그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이야기다. 그럼에도 구태여 준칙을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선거 철에 즈음한 의례적 선언에 불과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준칙의 세부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면, 시민단체가 정치개혁의 기치를 높이 치켜든 21세기 벽두에 총선을 보도하는 언론의 자세는 여느 때와 분명히 달라야 한다는 절실한 바람을 느낄 수 있다.



이는 그간의 선거관련 보도가 시민이 정치에 올바르게 참여하도록 이끌지 못했다는 뼈아픈 자성의 목소리다. 96년 당시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가 15대 총선을 ‘총체적 부정선거 ‘로 규정하고 그런 요소의 하나로 편파보도를 들었을 때, 언론은 아무도 정면 반박하지 못했다. 97년 말 대선 때 일부 유력 매체의 ‘편들기 ‘ 행태는 들추고 싶지 않을 만큼 언론계 전체에 부끄러운 화인을 남겼다. 이번 총선에서도 “내가 밀어서 아무개를 당선시키겠다“는 위험한 유혹에 발을 담그는 언론종사자가 있을지 모른다.



후보자의 공약·정책 위주로 보도하고 가십성 기사와 속보경쟁을 철저히 배제한다는 것이 현업기자들에게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안다. 편집 간부들로서는 후보별 지지도나 판세에 관한 여론조사 보도를 자제해달라는 요구를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재미 ‘에 익숙해진 독자들에게 외면 받아 경쟁매체에 뒤떨어질 짓을 자초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굽은 것은 펴는 것이 언론인의 역할 아닌가. 더구나 센세이셔널리즘으로 독자를 중독 시켜온 죄과를 어디서 씻을 것인가.



우리가 이번 총선 보도에서 으뜸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지역주의 극복이다. 한국 정치에서 지역주의는 도저히 넘지 못할 벽처럼 느껴진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깨트릴 시대적 소명이 언론에게 주어져 있다. 후보자의 지역 친밀도를 근거로 마치 지역 대표자와 비지역대표자의 경쟁인 것처럼 보도하는 경향은 이제 고쳐야 한다.



그것이 지역민의 정서에 영합하는 소소한 행위일지 몰라도, 우리 겨레의 앞날을 그르치는 커다란 범죄라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사실 그 지역감정이란 것 자체가 정치권에서 인위적으로 만든것이고,그걸 언론이 조장해 왔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다 아는 일이 아닌가.



보도준칙들이 현장에서 지켜지려면 무엇보다 각 매체에 자체 통제기구가 있어서 합리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회사가 이해관계에 따른 보도를 지시할 때 조직에 속해 있는 개인의 도덕성을 보호해줄 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총선보도가 언론이 바로 설 수 있는가에 대한 시험대라고 본다. 그러나 보도준칙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현장 종사자들이 허섭쓰레기 취급하면 그만이다. 때문에 기자들 개개인이 가슴에 명패를 다는 것처럼 속 깊이 새겨주길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