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협회가 더욱 노력을 기울여야 할 부분에 대한 질문에서 가장 많은 응답자(67%)가 ‘회원 전문성 제고를 위한 교육·연수 확대’를 들었다. 비율도 2위로 지목된 ‘언론개혁을 위한 연대활동’(36%) 보다 훨씬 높았다. 나는 이것이 전문직주의(professionalism)에 대한 관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회원 간 친목 및 유대강화’를 기대하는 답변은 9%에 불과했다. 이 결과는 기자협회의 성격이 다른 협회나 모임과는 다르다는 것을 말해준다.
기자가 전문직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었다. 많은 직업이 있지만 그 중 일부만 전문직으로 인정받고 있다. 협회 결성, 윤리강령 제정, 전문 교육기관의 존재, 명칭과 직업 수행의 배타성 등이 직업사회학자들이 말하는 전문직의 제도적 조건이다.
협회가 불혹의 나이를 바라보는 39주년을 맞이한 때 한국 기자들은 어떤 위치에 있을까? ‘사회의 목탁’ ‘자유언론의 수호’ ‘기자 정신’ 등은 오늘날 주로 ‘원로 언론인’에게 예비된 찬사들이다. ‘권언유착’ ‘자사 이기주의’ ‘골프 부킹’ ‘월급쟁이’ 등이 오늘의 기자를 수식하는 어휘로 자주 사용된다. 복잡한 사안이 발생하면 외부 기고가의 칼럼이 기자를 대신한다. 소속 기자가 아니라, ‘화려한’ 외부 필진에 대한 자랑이 신문 사고를 채운다. 한 ‘석학’의 사춘기적 자기과시가 ‘나 도올’이라는 이상한 필명과 함께 ‘기사’라는 이름으로 전면에 실린다.
외부에 비친 모습에 비하면 대부분의 기자들은 고군분투하고 있다. 적어도 내가 만난 기자들은. 근무시간도 길다. 한국언론재단이 최근 발표한 조사에서 하루 평균 11시간이 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그렇다고 급여 수준이 높은 것도 아니다. 같은 조사에서 응답자의 20% 정도가 연봉 2천만원 미만이었다. 전체의 60%가 연봉 4천만원 미만이었다. 직업적 ‘생명’과 노후 보장에서도 기자가 유리하지 않다.
그래서 많은 기자들이 자존심 하나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궁극적으로 전문직 기자로서의 자존심이다. 그 점에서 ‘전문성의 결여’는 뼈아픈 지적이며 고백이다. 협회가 무엇보다 전문성 제고를 위해 노력해 달라는 부탁에는 이런 절박함이 들어있다. 고된 업무 후에 삼삼오오 모여 졸음을 쫓으며 공부하는 기자들의 공부모임도 많이 생겨났다. 협회에 ‘기자윤리강화’를요구하는 응답(32%)이 ‘언론개혁’(36%)이나 ‘회원권익’(32%)과 비슷한 수준으로 나온 것도 같은 이유로 보인다. 사실 ‘언론개혁’ 역시 기자의 자존심과 자율성을 지키기 위한 조건과 관련되어 있다. 역으로 언론개혁에서 논의되는 ‘편집권 독립’은 기자의 전문직주의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협회보에 대한 기대에서도 2위인 ‘언론개혁 관련 이슈’(44%)에 비해 ‘언론보도 비판’(49%)이 더 높게 나와 1위를 차지했다. 보도비판도 전문성과 신뢰를 높이기 위한 작업이다. 3위로 나온 ‘기자윤리 및 비리 감시’(34%)도 마찬가지다. 협회와 협회보가 기자의 전문직주의를 높이는 작업에 구심점이 될 것을 회원들이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회원들도 더욱 성숙한 자세로 자신의 직업과 협회를 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 이제 39주년이 아닌가. 정치성향 차이나 소속언론사의 특성, 직급과 세대의 간격이 기자공동체를 갈라놓아서는 안된다. 기자상 하나로 탈퇴가 반복되는 것과 같은 어린아이의 일은 버려야 한다. 서로 경쟁하고 비판하더라도, 전문직의 권위와 자존심을 지키는 일에는 힘을 합쳐야 한다. 잘못된 관행을 반복하고 부당한 특권을 사수하라는 말은 물론 아니다. 동료의 잘못을 묵인하라는 것도 아니다. 권력이 두려워하고, 독자와 시청자가 사랑하고 신뢰하며 존경하는 기자직을 위해서는 그 반대의 일을 해야 한다. 전문직으로서의 위상을 복원하는 공동의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 중심에 협회와 협회보가 서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