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쟁점진단-´밴처 엑소더스´ 떠난 자와 남은 자

끝없는 이직바람···기자위상·저널리즘 회복 과제 남겨, 정체성 위기 대처 소홀이 빚은 ´예고된 사건´···´존재가치´되찾을 비전 제시해야

김상철  2000.11.14 00:00:00

기사프린트

언제까지 ´벤처 엑소더스가 계속되고 있다´고만 말할 것인가. 최근 양상에 대한 몇몇 기자들의 분석은 이렇다.



"가깝게는 IMF에서 시작된 기자 정체성의 위기와 경제적 유혹 등이 합세해 대량 이직으로 치닫고 있다."



"기자라는 고전적 의미는 탈색되고 샐러리맨화 하면서, 이왕 같은 샐러리맨 될 바에 보수 좋고 비전 있는 데로 옮기는 것 아닌가."



떠난 자의 변(辯)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인터넷업체로 옮긴 한 기자는 "정체성 위기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잖은가. 광고국 직원인지 헷갈릴 정도로 기사 이외의 요구도 많다. 하지만 여기선 나중에 잘되면 한 밑천 잡을 기회라도 있다"고 말한다. 이 기자는 "언론사들이 기자들에게 비전과 존재가치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이직은 계속될 것"이라며 "여기서 ´용도폐기´되더라도 실물경험이 있으니 복귀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실패도 자산이고 지금의 시도는 투자라는 생각이다. 인터넷신문 창간에 합류한 한 기자는 "´이젠 우리가 직접 언론을 만들어보자´는 한 마디에 참여한 기자들도 많았다"는 말로 이같은 정서를 전했다.



떠난 자들은 하루하루 또다른 승부에 여념이 없다.



증권을 중심으로 한 경제뉴스를 리얼타임으로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겠다는 인터넷신문 이데일리는 3월 하순으로 예정된 사이트 오픈 준비에 한창이다. 경제지 출신을 비롯한 20명의 경력기자들은 통상 아침 8시 회의로 하루를 시작한다.



최창환 대표는 "실제 시장에서 인정받는 정보를 제공할 것이다. 인터넷 활성화를 토대로 하는 수요자 위주의 맞춤형 뉴스 등 비전은 얼마든지 널려있다"며 "가능성을 어떻게 실현하느냐가 문제이지 전망에 대해선 확신한다"고 말한다.



올들어 뉴스서비스를 시작한 머니투데이의 홍선근 대표는 "적어도 이제까지 금융시장에서 언론은 없었다"고 강조한다. 여기에 인터넷이 뉴스의 ´속도와 깊이´를 아우를 수 있는 매체라고 판단, 지난해 8월 일찌감치 창업에 나섰다. 현재 기존 경력기자 13명, 견습1·2기 등 30명의 기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두 매체 공히 정보공개를 통한 시장 투명성 강화를 주요 모토로 내걸고 있다. 짧게는 2개월 적어도 상반기 중 결판이 날 것이라는 전망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홍 대표는 "지금은 체력전"이라고 표현한다. 분초를 다투는 사업인 만큼 6개월은 그들에게 긴시간이다.



말지 기자로 활동했다가 지난해 7월 인터넷서점 알라딘을 창업한 조유식 대표는 대세로서 정보산업을 인정하면서도 "미국에서도 기존 메이저신문이 아닌 군소 인터넷신문의 성공 사례는 극히 드물다"고 말했다. 아울러 "인터넷은 1등만이 살아남는 시장이다. 경쟁력을 면밀히 따져보고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자들을 새 출발하게 하는 동인은 물론 서두의 분석처럼 ´벤처정신´ 때문만은 아니다.



한겨레에서 지난해 4월 인터넷 비즈니스에 뛰어든 인티즌 박태웅 대표는 기자인력의 장점으로 3가지를 들었다. 콘텐츠의 가공·전달·반응 전반에 걸쳐 미디어에 대한 이해가 높고, ´시간 싸움´에서 절실한 데드라인 감각이 있으며 무엇보다 사업의 중심일 정도로 홍보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남아있는 기자들은 왜 남아있는가. 물론 비판도 적지 않다. 한 일간지 기자는 "떠난 사람들은 신문사에서 벗어난 해방감, 새 일을 맞는 의욕 등으로 분위기야 좋겠지만 과연 인터넷신문이 객관적인 투자정보라는 기사의 질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결국 돈 되는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건데 그게 과연 기자 본연의 길이었나" 반문했다.



또다른 한 기자 역시 "특히 정통부 출입기자들의 경우 그쪽 인맥을 통해 지원금도 먼저 따내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궁극적으로 정치부에서 정계로 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다른 한편 한 경제부 기자는 "그래도 언론인으로서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돈보다는 글을 쓰고 싶어하는 기자 말이다"라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한 기자는 "어차피 대세라면 부화뇌동할 필요 없다는 생각이다. 외국 정론지처럼 기사 쓰고 싶다면 여기 남아서 꾸준히 기사 쓰는 게 낫다"고도 말했다.



주목되는 바는 남아있는 자든 떠난 자든 문제의식의 출발점이 일치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중요한 언론산업에서 그 중심인 기자들을 어떻게 대우했느냐 하는 문제다.



"일차적인 책임은 기존 언론에 있다. 폐쇄적인 의사소통 구조, 경직된 조직문화, 여기에 기자를 수하 부리듯 하니 안나갈 수 있겠는가.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당장 기자 구하기에도 어렵지 않은가. 다 기자들을 중시하지 못한 탓이다." 한 기자의 말이다.



인터넷신문을 창간하는 기자들 역시 기존 언론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대안언론구축이라는명분은 결코 ´돈 벌러 나간다´는 비난에 대한 변명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홍선근 대표는 "기자에 대한 가치 제고, 그런 인식을 기존 언론에 퍼질 수 있게 하는 것 자체도 긍정적인 역할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일차적인 숙제는 기존 언론사로 돌아온다. 자극은 되고 있는데 어떻게 이를 소화할 것인가. 기회는 벤처에만 있지 않다.



이를 위해 속보에서 벗어난 신문 본연의 기능 확립, 기자 재교육과 연수 등 각종 투자,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화&. 익숙한 과제들이 던져진다. 여기에 인터넷업체로 간 한 기자의 말이 좀체 귀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미국 언론은 기자를 자르더라도 남아있는 사람들의 처우는 잘 해준 것으로 알고 있다. ´살아남은 자´들에 대해서는 대우해 준 것이다. 그러나 우리 언론은 어떻게 했나. 실컷 자르고 나서도 ´봐라. 개기면 이렇게 된다´는 식이었다."



항상 ´기자는 우리의 자산´이라는 말은 많이 듣지만, 실제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굳이 남아있는 자들을 통하지 않더라도 떠난 자들의 궤적이 얼마든지 증명한다. 그리고 기자와 언론의 역할을 둘러싼 해묵은 과제들이 다시 던져지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 변화를 얘기하지만 그것을 말하는 근거도 기실 지금 그 자리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기자 이직 현상은 너도나도 디지털, 인터넷을 화두로 잡고 있는 기존 언론사에 역설적으로 기자직의 무게와 저널리즘의 복원 필요성을 재확인시켜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