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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39주년 기념사} 어려울수록 돌아가라!

이상기 회장  2003.08.13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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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자협회가 창립 39돌을 맞았습니다.

내년이면 40주년, 불혹에 이릅니다. 어떻습니까? 지금 우리는. 그 연륜에 걸맞게 흔들림 없이 반듯하게 나아가고 있습니까?

지난 30년간은 박정희 군사정권과 신군부에 맞서 언론자유를 수호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고, 선배기자들은 목숨을 걸고 이를 지켜냈습니다. 고난의 길을 두려워하지 않은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 언론은 오늘에 이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모습은 어떻습니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비전을 제시하고 ‘개혁’의 주체가 돼야 할 우리가 되레 국민으로부터 외면 받는 ‘개혁대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스스로 자초한 일이나 다름없습니다.

처음 기자가 됐을 때는 ‘대한민국기자’였는데 2-3년이 채 안돼 자사의 이익을 관철시키는데 급급한 ‘회사원’이 돼 버린 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 아닙니까?

권력에 대한 편집권은 거의 독립이 됐지만 자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채 점점 더 종속화되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무기력하게 바라만 볼 뿐입니다.

우리 사회 공동의 목표보다는 개개 언론사의 이익이나 관심사가 우선시되면서 사회의 향도역을 맡아야 할 언론이 되레 우왕좌왕하고 이전투구하는 모습은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광고시장이 위축되고 각종 쟁송에 휘말리는 등 언론환경이 갈수록 악화되는 것만 탓할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언론에 대한 국민들의 뿌리깊은 불신을 인식해야 합니다.

언론사끼리 편을 가르고, 똑같은 사안에 대해 왜 그렇게 다르게 보도하는지 국민들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카드 빚 때문에 세상을 등지는 가족이 속출하고, 대북송금 문제, 핵폐기장 건설과 새만금 간척사업 등 온 나라가 들썩일 때 과연 언론이 역할을 잘 했는지 한번쯤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옛말에 어려울수록 돌아가란 말이 있습니다.

돌아갑시다. 기본으로 돌아가서 원칙대로 풉시다!

회사원이 아닌 ‘대-한민국 기자’로서 양심과 상식을 바탕으로 시시비비를 가려 진실을 밝혀내는 일, 그리고 불편부당한 자세로 공정하게 보도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언론의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살 길입니다.

장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死生者不死, 生生者不生’ (삶을 죽이는 자는 죽지 않고, 삶을 살리려는 자는 살지 못한다).

오늘에급급해 제 살길만 찾지 말고, 모두가 더불어 살 수 있는 길을 찾읍시다.

내년 불혹의 생일날엔 당당하게 제 목소리 내며, 시대정신을 이끌어갈 우리 언론의 변화된 모습을 회원 여러분과 함께 간절히 기원합니다. 시인 박노해의 시가 우리의 다짐을 더욱 다져주고 있습니다.



너의 눈감음으로

세상의 모든 새벽을 가리지 마라

너의 둔감함으로

세상의 모든 새싹을 가리지 마라

너의 눈부심으로

세상의 모든 슬픔을 가리지 마라

너의 체념으로

세상의 모든 도전을 가리지 마라

너의 절망으로

세상의 모든 희망을 가리지 마라.

<가리지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