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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따뜻한 동지애, 샘솟는 그리움

10여년 세월 아우른 한겨레 ´홈커밍데이´에 다녀와서

조성숙  2000.11.14 14:4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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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숙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한겨레를 떠난지 8년만의 귀향, 설레임을 안고 들어선 새로 지은 넓은 방에서 낯익은 얼굴들이 환하게 미소지으며 담소하고 있었다. 창간동지들, 선후배,남녀가 어우러진 방안 공기는 갈수록 달아오르며 거듭되는 악수, 인사말,반가움에 닫힐 줄 모르는 입들. 스스로 씨뿌려 일군 곡식으로 지은 한솥의 밥을 먹으며 오로지 ´새 언론´의 꿈을 펼쳐보겠다는 일념으로 함께 줄달음쳐온 우리이기에 세월의 간격을 뛰어넘어 끈끈한 정이 진하게 다가왔다.



어떻게 태어난 한겨레인가. 1987년 6월항쟁으로 쟁취한 민주화의 여세를 몰아 국민이 만들어낸 신문, 기존언론에 대한 실망과 좌절의 반작용으로 탄생된 새 언론, 오늘날 총선연대의 낙천 낙선운동에 열광적으로 동참하는 국민의 열기 이상으로 뜨거운 정성으로 뭉쳐진 신문이 아니던가. 그 불씨를 지핀 것은

박정희정권의 언론탄압에 맞서 자유언론투쟁에 몸바쳐온 동아 조선과 80년대 해직언론인들의 새 언론 창간에 대한 사명감, 우리의 귀감이었던 대쪽언론인 송건호선생의 동참, 그리고 민주인사들의 후원이었다.



많은 국민들이 ´송건호´라는 이름을 보고 기금을 쾌척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해서 안국동사무실에서 잉태된 ´한겨레신문´은 양평동사옥에서 우렁찬 윤전기소리속에서 태어나는 감격을 한겨레가족과 수만명 주주들에게 안겨주었고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 내집을 마련한 만리동시대에 한겨레는 살림을 키우며 한국언론의 선두그룹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언론, 노동자 농민 여성 장애인 등 소외계층의 대변지, 대중과 함께 하는 정론지´를 표방하는 창간정신에 매혹되어 어엿한 직장을 뛰쳐나와 합류한 편집 영업 광고 등 각분야의 인재들과 창간에 참여한 해직언론인들로 구성된 최초의 한겨레가족들은 MT를 통해 밤새도록 제작방향에 대해 토론을 했고 두달에 걸친 시각조정교육을 열심히 받았으며 봉급체계 등

운영방침에 대해서조차 모든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하여 결정하는 등 모든 것이

자율적, 민주적으로 행해졌다.



아무도 해보지 않은 실험에 한겨레가족들은 겁없이 뛰어들며 하나하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나갔다. 취재보도에 성역을 없앴고 촌지안받기는 물론이고, 한국최초의 한글가로쓰기와 편집의 기계화, 편집국장 및 사장의 직선제 선출도 해냈다. 이중일부는오늘의 언론계 변화의 효시가 되었다.

시행착오와 숱한 시련을 이겨내며 걸어온 초창기의 모든 것은 감격 그 자체이었다.



그때 그 감격이 이번 홈커밍데이에 되살아나고 있었다. 강산이 변한다는 창간10년이 넘은 오늘 후배들은 훌쩍 자라있었다. 데스크를 보면서 가끔 입씨름을 벌였던 후배들이 고참기자로, 데스크로, 국장으로 책임있는 자리에서 실력을 발휘하고 있고 취재부서와 남녀의 벽을 뛰어넘어 활약하는 모습이 마음든든하였다. 경제적 불이익을 감수하고 한겨레에 들어온 뒤 집을 자꾸 줄여가던 창간동지도 있었던 배고픈 시절을 견뎌온 한겨레가 이제는 광고사정이 많이 나아졌다는 소식이 무엇보다도 흐뭇했다.



언론단체들과도 유대를 키워 한겨레사장이 신문협회장에 진출하는 등 언론계주류에 뛰어드는 모습은 한겨레의 성장을 가늠하게 한다. 언론계의 노골적인 질시를 받았던 시절에 비해보면 금석지감이 있다. 송건호 사장은 사원총회 때마다 "이 신문은 여러분 기자들의 것입니다.

마음대로 쓰십시오"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한겨레는 오늘날 급변하는 시대상황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한겨레의 당찬 주인들은 매일매일의 도전 앞에서 굳건히 창간이념을 지켜가리라 굳게 믿으며 따뜻한 동지애와 샘솟는 그리움을 새롭게 확인시켜준 홈커밍데이를 마련한 한국기자협회 한겨레지회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