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국민일보 사태에 관한 언급을 자제해왔다. 한 언론사의 내부 갈등에 대해 외부에서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에서였다. 무엇보다도 기독교계 지도자의 한 사람인 창업자와 그의 아들 조희준 대주주가 사태를 잘 풀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사태는 장기화되고 노조위원장이 20일부터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다. 언론노련 위원장까지 단식농성에 합류한 상황이니 전 언론계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다.
언론계 내부에서는 작년 11월 회장직에서 물러난 조희준 대주주 측의 ´국민일보 고사전략´이 공공연하게 나돌았었다. 노사가 사사건건 대립하는 바람에 감정의 앙금이 쌓일대로 쌓여 " 도저히 함께 갈 수 없다 "고 대주주 측이 판단했다는 것이 그 근거였다. 미디어그룹을 만든다는 원대한 계획에 ´돈이 안되는´ 국민일보가 방해가 된다고 여겨 과감히 버리기로 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냉혹한 자본의 논리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고사 전략´ 이란 것은 그저 소문이길 바란다. 언론계의 극심한 경쟁 속에서 신생지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밤낮으로 뛰어온 사원들의 생활 터전을 ´말려 죽이기´ 로 했다는 것은 듣기에도 끔찍하다.
설령 그 전략에 따라 거대 미디어그룹으로 성장한다고 해도, 300여 사원과 그 가족들의 뼈저린 눈물이 스민다면 그건 기초공사부터 균열의 조짐을 갖는 것이다. 특히 평생회원으로까지 가입하며 국민일보를 훌륭한 언론으로 대접해 온 독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범하는 것이다.
상황이 악화되고 있지만, 희망의 불씨는 있다. 노조가 내건 10가지 요구 중 하나인, 제 역할을 못한 편집국장 교체를 회사가 받아들인 것은 고무적이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밀린 임금부터 우선 해결해주기를 바란다. 스포츠 투데이의 막대한 광고비나 새 매체 창간 비용 등을 생각할 때, 임금 체불은 지나치다.
노사의 공식, 비공식 접촉이 단절된 상태를 풀어보기 위해 중간간부들이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실질적이고 최종적인 권한을 가진 쪽에서 직접 나서야 풀리게 되어 있다.
국민일보 노사 협상 결과는 언론계의 지형을 변하게 할 진원지가 될 수도 있다. 연봉계약제 도입, 언론그룹 내부의 조직·인력 교류, 사주의 편집권 간섭 등. 우리는 그런 문제들에반드시부정적 시각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반드시 내부의 합리적 논의에 의해서 결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 시점에서 국민일보 창간 당시 만들어진 사시를 되새겨본다. 사랑·진실·인간. 이것들은 언론이 자본을 배불리 하는 도구로만 쓰이는 현실에서 허망한 구호로만 느껴진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 한 젊고 유망한 기자는 일주일째 목숨을 건 채 곡기를 끊고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고 있다. 우리는 이 절실한 몸짓에서 한국 언론의 생명력을 본다. 국민일보 창업자와 조희준 대주주의 행보도 종교인다운 이타성을 회복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