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 첫번째를 꼽으라면 단연 기자로서의 원칙주의자의 모습이다. 1996년 9월. 수습기자를 막 마친 햇병아리 기자였을 때 김 선배는 사건팀을 거느리는 이른바 시경캡이었다. 당시 국민일보 1년차는 연중휴가란 게 고작 3일 뿐이었는데 막내인 난 사건팀 고참 선배들이 다 휴가를 간 뒤인 9월초에서야 휴가를 받을 수가 있었다. 휴가 첫날엔 고향인 전북 전주까지 내려가고,둘째날엔 하루종일 한 맺히도록 부족한 잠을 잤고, 셋째날엔 서울로 돌아왔다. 그런데 다음날 출근한 나는 청천벽력 같은 시경캡의 고함소리를 들어야 했다. 강원도 강릉에 무장공비들이 침투해서 온 나라가 난리법썩인데 도대체 사스마와리란 놈이 어떻게 회사에 전화 한 번 없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난 1주일간 꼬박 야근을 해야 했다. 밀린 잠을 자느라 뉴스 한번 보지 못한 나였지만 김 선배의 ‘지시’에 순응할 수 밖에 없던 것은 김 선배가 기자 특유의 ‘곤조’를 강조하는 원칙주의자였기 때문이었다.
두번째는 곰(?) 같은 외모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곰살스러움과 따뜻함이다. 회사 내외를 막론하고 후배라면 아마 김 선배가 사주는 소주 한잔 안 얻어먹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술을 한번 마셨다 하면 새벽 2∼3시가 일쑤이고,헤어지기 전엔 반드시 속풀이용 라면 한 그릇이라도 반드시 챙겨먹이는 엄마 같은 사람이 김 선배다. 김 선배가 시경캡 시절 밑에 있는 ‘졸다구’ 입장에선 매일 저녁 식사를 함께 하자는 선배가 어찌 못마땅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8년차 중고참이 되고서야 각별한 후배사랑은 함부로 흉내낼 수 없음을 깨달았다.
세번째는 기자의 권익을 위한 고집스러움이다. 1998년 사회부 사건팀에서는 햇병아리 기자가 구속되는 사건이 있었다. 의욕이 넘친 그 후배가 서울지검 산하의 모 지청에서 수사서류를 몰래 봤는데, 해당 지청장은 절도죄로 그 후배를 구속시켰다.
국민일보 기협지회장이었던 김 선배는 그 후배의 석방은 물론 검찰의 과잉대응을 문제삼아 검찰청 앞에서 1달 가깝게 시위를 벌였고, 결국 각 사의 공론화를 이끌어냈다. 2000년 3월 국민일보 기자들이 경영정상화란 문제를 놓고 회사 경영진과 마찰을 빚었을 때 국민일보 노조위원장이었던 선배는 무려 30일간이나 곡기를 끊고 단식농성을 벌여기자로서의최소 권리를 관철시켰다. 2001년엔 산별노조인 전국언론노조 출범을 준비하고 출범 뒤엔 초대 사무처장을 지냈고,2002년엔 위원장으로 일했다.
이런 김 선배가 한국기자협회장에 출마하겠다고 털어놨을 때 난 솔직히 걱정이란 게 좀 앞섰다. 과연 꼭 기자사회의 권익을 위해 김 선배가 총대를 매야 하는가란 생각 때문이었다. 김 선배가 국민일보의 기둥격인 공채 1기요, 능력을 인정받는 기자여서다. 사스마와리와 검찰 등에서 사회부 9년, 경제부 3년, 정치부 정당 6개월 등 기자라면 한번쯤 일해보고 싶은 주요 출입처를 두루 거쳤다. 마음만 먹으면 정해진 틀 안에서 속 편하게 살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김 선배는 후배의 걱정스러움에 이런 말을 던졌다.
“기자가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되기 점점 더 어려워진다면 과연 일만 하는 게 순리일까”.
김 선배의 말을 듣고서 나는 마음을 고쳐먹고 선배를 밀기로 했다. 기협 지회장과 노조위원장, 전국 언론노련 및 언론노조에서 활동하며 얻은 김 선배의 폭넓은 경험과 이해, 균형감각이 기자들이 맘껏 일할 수 있는 기자세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란 믿음에서였다.
특히 김 선배 밑에서 수습기자와 햇병아리 사건기자를 하면서 김 선배를 접했던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 선배의 원칙주의적 면모와 기자 권익에 대한 고집스러움, 그러면서도 세상과 사람에 대한 따뜻함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희망이 있는 기자세계가 구현될 수 있을 것을.
기호2번 손관수 후보
기자협회를 국민들의 품으로… 기자협회에 변화를 許하라!
사람들은 말한다, 기자협회에는 기자가 없다고…
사람들은 또 말한다, 기자협회에는 오로지 기자들 뿐이라고…
살인적으로 과도한 노동속에 여전히 불합리한 지면·방송 제작 관행, 거대 언론의 언론시장 독과점, 영향력을 과신하는 수구보수 언론의 오만함, 이에 따른 생존권의 위기, 고사(枯死) 직전에 놓인 지방 언론…. 기자들이 처한 현실은 이처럼 참담하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이 처한 현실은 더욱 참담하다.
많은 머리 숫자를 최고의 도덕률로 삼고 있는 거대 야당의 정략적인 공영방송 찬탈 음모가 버젓이 저질러지고 있다. 100일 넘게 파업하며 최소한의 생존권만이라도 보장해달라는 절규가 메아리친다. '경제적 사망선고'인 손배가압류는 노동자들을 옥죈다. 고작 십만원 남짓을 손에 쥐는노동자들이아이와 아내, 친구들을 등지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렬이 잇따른다. 언론은 그 잇따른 죽음들에 그제서야 젊잖게 아는체 한다. 노조도 문제지만 기업들도 조금 심했다고… 대한민국은 여전히 '지금은 노조시대'일 뿐이다. 처지는 농민들도 마찬가지다. 이국만리 타향에서 추석 명절에 주검으로 돌아온 농민이 있었다. 농업이 말살된다고, 농민들이 다 죽는다고 밭고랑처럼 깊이 패인 주름진 얼굴로 아스팔트 농사짓는 농투산이들이 있다. 영어라고는 생전 배우지도 못한 농민들이 FTA니 DDA, WTO 반대의 외침을 토해내고 있다. 하지만 신문에서, 방송에서는 그들의 폭력성만이 보일 뿐이다.
그뿐 아니다. 에너지 정책에 대한 근본적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전북 부안에서부터 울려퍼지기 시작됐다. 하지만 부안의 목소리는 화염병과 폭력 사태로 비화되기 전까지 들리지 않았다. 그저 '몰지각한 폭력'과 지역 이기주의, '무정부 상태, 부안'으로만 전해졌다. 미국의 침략 전쟁에, 학살 전쟁에 함께하는 것이 한·미 동맹 관계를 생각할 때 필요한 것이고, 나아가 국익을 보장해줄 것이라는 목소리가 온 나라를 휘젓고 다닌다. 지난 50년동안 당연스레 횡행했던 권력과 자본이 저지른 검은 거래를 밝히려는 검찰 수사를 수구보수 언론은 거대 야당과 어깨 겯고 '경제 발목잡기' 논리로 물고 늘어진다. 메이저 3개사가 장악하고 있는 신문 시장은 나머지 신문은 물론, 수많은 지방신문의 생존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 폐해는 기자들의 생존을 짓누름은 물론이고 다양한 입장과 여론의 건강한 소통을 막는 것에 이른다.
우리의 현실이다. 기자들을 애타게 찾는 우리 국민들의 참담한 현실이다. 하지만 이 현실속에 기자들이-기자협회가 없는 것 또한 우리의 엄연한 현실이다. 기자들은 사교집단, 이익집단으로 변질한 기자협회를 냉소하며 기자협회를 떠나고 있다. 그저 1년에 딱 한 번 기협 축구할 때 소속감을 느끼고 그것으로 끝이다.
이처럼 기자협회는 기자들이 하나씩 둘씩 떠나는 조직이 되고 있다. 또한 기자협회는 기자들만 있을 뿐 기자들을 애타게 찾는 국민들은 없는 조직이 되고 있다. 이러한 오명을 벗어던지기 위해서는 더 이상 기자협회에 대한 변화와 혁신을 미뤄둘 수 없다. 처절하도록 치열하게 혁신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기자협회를 진정한 기자들의 조직으로, 국민들의 품으로돌려놓는 역할을할 사람이 손관수 후보라고만 얘기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지난해 7개월 남짓의 짧은 기간동안 통일부 기자실에서 함께 생활한 손관수 후보는 분명히 남다른 모습이었다. 당시 통일부 기자실은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군사·경제·정치·체육·이산가족 등 다양한 부문에서 전면적이고 본격적으로 물꼬를 튼 남북 화해협력 분위기 덕분에 덩달아 바빴다. 방북 풀 취재단을 꾸리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고, 북과 연계된 일인 만큼 민감한 사안이 발생할 경우 조정하는 업무도 만만치 않았다. 이때 손 후보는 어떤 곤란한 상황에서도 넉넉한 품성으로 분명한 원칙을 놓지 않고 갈등을 해결하고 업무상 충돌을 조정하는 선배였다. 또한 미국 켈리 차관보의 평양 방문 직후 급격히 얼어붙은 남북 관계속에서도 우직하게 남북의 화해 협력 문제에서나, 민족을 중심으로 북핵 문제가 해결되어야한다는 분명한 소신을 견지하는 선배였다. 자연스레 후배들의 존경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손 후보가 기자협회를 변화·혁신시키는 중책을 자청했다니 반갑기 그지없는 일이다. 언론계는 물론 세상의 변화 발전에 대한 분명한 의지를 갖고 있는 손 후보이기에 더더욱 그러한 것이다. 이제 기자협회는 손관수 후보와 함께, 기자 선·후배 동료들과 함께 변화를 시작할 때다. 나도 이제 기자협회에 가입할 때가 된 것 같다.
기호3번 이상기 후보
기자 자부심과 언론개혁 조화시킬 후보
갈수록 기자 노릇 하기 힘들어진다. 기자로서 누렸던 특권, 그 알량한 특권을 누리는 재미 같은 것도 이제 찾아 보기 어렵다. 남들이 접근하기 힘들었던 정보 원천에 기자들은 비교적 쉽게 다가갈 수 있었고 그것에 우쭐하는 기분도 있었다.
지금은 지천으로 널린 것이 정보다. 더 중요한 변화는 어쩌면 기자들이 갖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정확한 정보를 순식간에 유통시킬 수 있는 수단을 누구든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사 한 줄 잘못 쓰면 당장 반박 편지가 날아들고 ‘시민기자’라는 말도 있듯이 누구든 기사를 쓰고 금세 유통시킬 수 있게 됐다. 정부 부처 관리들에게 자료 내놓아라 큰 소리 땅땅 치며 위세 부리던 시절도 다 지나갔다. 관리들은 브리핑 룸에 들러 전달하고 싶은 말과 몇 마디 질의응답하고 나면 그만이다. 정보 전달자로서 기자들의 위세는 땅에 떨어지고 반대로 정보 공급자들의 콧대가높아지고 있다. 사무실출입까지 봉쇄당해 관리들의 코빼기 보기도 힘든 실정이다.
재미 없어지고 힘들어진다고 푸념만 늘어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언론계 안팎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논리를 개발하고 실천에 옮기는 것은 여전히 기자협회의 몫이다. 기자의 권익을 찾는 일은 기자협회 본연의 책무이기 때문이다.
권익찾기는 제도개혁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본다. 우리가 챙겨야 할 정당한 권익을 빼앗아 가는 법적 제도적 장치는 폐기시키고 권익을 옹호할 수 있는 장치는 적극 마련해 나가야 한다.
이상기 후보를 추천하는 이유도 다른 데 있지 않다. 그는 재임 기간 제도 개혁에 애써 왔고 어느 정도 성과도 거뒀다.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는 안목을 갖고 있고 실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추진력도 겸비하고 있기에,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십분 능력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를 건다.
필자가 직접 관여한 일이라서 소개하기 면구스럽지만 뉴스통신진흥법 제정에 보여 준 그의 열정은 솔직히 생각 밖이었다. 뉴스통신진흥법은 지난 8월 30일자로 시행에 들어갔는데 아직도 언론계 내부에서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법 제정의 취지와 의미를 설명하는 초기 단계에서부터 겪어야 했던 고초는 오죽 심했겠는가. 이 후보는 달랐다. 단 몇 분 간의 설명으로 법 제정의 필요성을 정확히 파악한 몇 안 되는 사람 가운데 하나가 그였다. 마치 자기 일처럼 다른 관계자들을 설복했고 결국 불가능하리라던 법 제정을 가능하게 만드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렇듯 열심이었던 이유는 딴 데 있지 않을 것이다. 특정 언론사 아닌 언론계 전체에 득이 된다는 판단이 섰기에 두 팔 걷어 붙이고 나섰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후보는 요즈음에는 지역신문발전 지원법 제정에 몰두하고 있다. 이 역시 지역신문 몇몇 사에게 혜택을 주자는 게 아니다. 이른바 중앙지에 비해 턱없이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 지역신문을 살리는 것이 지방분권화, 다원화로 가는 시대 추세에 부합한다는 것은 새삼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는 지난 임기 중 공익재단들과 꾸준히 접촉해 언론인 연수 확대, 기협기금 확충에 애써왔다. 기자협회는 우리 사회를 변혁시키는 데 앞장서는 한편, 사회를 바꾸는 주체인 기자 회원의 재교육과 복지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기자 회원들이국제적 안목을 키울 수있도록 협회 차원의 국제교류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동아시아 기자포럼, 해외동포기자대회 그리고 한미기자교류를 성사시켰고, 남북기자교류에도 구체적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제 그 초석 위에서 열매를 거두고 싶어한다.
이 후보는 ‘대한민국 기자가 되자’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닌다. 자사 이기주의, 자매체 우선주의에 함몰되지 말자는 뜻일 게다. 그는 진실된 기사 한 줄에 목숨까지도 걸어야 한다는, 지극히 옳은 말이지만 그렇다고 선뜻 입에 올리기도 힘든 말도 공개석상에서 거리끼지 않는 우직하고 올곧은 사람이다. 지난 2년 간의 소중한 경험을 살려 아쉬웠던 대목을 채워 넣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도 결코 손해보는 일은 아닌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