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계속되는 산불 취재에 지친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을 때, 삼척팀의 다급한 지원요청이 왔다. 4월 11일 오전 10시.
몰아치는 강풍으로 산불이 걷잡을 수 없게 확산되고 있다는 전갈이다. 급히 팀을 이뤄 도착한 삼척 칠곡 마을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온 동네가 거대한 불기둥에 휩싸인 채, 우박처럼 쏟아지는 불씨 섞인 잿더미들 사이로 이리 저리 뛰는 진화 공무원들. 요란한 소방차 싸이렌 소리와 함께 한 바가지 물이라도 지붕에다 더 끼얹으려 안간힘을 쓰는 주민들. 마굿간의 소 고삐를 풀려다 머리를 그을린 아주머니. 집안의 집기들을 마당에 마구던지는 아저씨….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하늘의 해마저 가린 검붉은 연기 사이로 나에게 달려온 소방관들.
“촬영은 무슨…. 빨리 상황실로 지원 요청 전화라도 하세요”라며 다급히 말한다.
그 사이 정창환 기자와 홍동훈 운전기사는 소방호스를 잡고 불 붙은 집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눈을 뜰 수 없는 가운데서도 무조건 뜨거운 쪽으로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는 사이, 산불은 이미 건너편 산 너머로 번지고 있었다.
7번 국도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번지는 산불을 뚫고 찾은 해안가 마을은 온 동네 가옥이 불타고 있었다.
해양경찰관의 긴급 대피 호루라기 소리 속에 한 아주머니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절규하고 있었다.
“집이 불타는데 어디로 가느냐”고.
마을 사람 대부분이 바다 한가운데 배 위에서 떠 있다고 위로하는 경찰관의 말이 기자의 가슴을 친다.
지난 4월 7일 고성, 강릉, 삼척에서 발생한 산불은 9일 동안 영동 5개 시군, 14,000ha의 산림과 400여 채의 가옥을 불태우고 700여 명의 이재민을 만든 뒤, 9일만에 꺼졌다.
20년 가까이 취재생활을 해 온 기자의 눈에 비친 이번 산불 진화대책은 정말로 형편없었다. 연기만 따라다니는 일부 진화 요원들, 제각기 접근하는 소방헬기들, 구경나온 주민들로 마비된 접근 도로망…. 한 마디로 지휘체계의 부재였다.
그동안 수십 년에 걸쳐 수천 번 실시됐던 민방위훈련 결과는 어디로 실종됐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컨테이너 가옥에 앉은 홀로 사는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을 보며 하루 빨리 환한 웃음이 되돌아올 수 있도록 우리 국민 모두가 참여해 헌옷가지, 라면 한 상자라도 보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