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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기자상 수상 취·재·기] 수포성 질병 구제역 파동

교회서 전화제보 받고 현장 달려가, ´국가경제 위협´ ´확실한 대책 강구´ 사이 갈등 느껴

고기석  2000.11.1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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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석 경기일보 제2사회부 기자





나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주일 오전은 가족과 함께 교회에서 지낸다. 3월 26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예배를 마친 후 핸드폰 메세지를 확인하자 낯선 번호가 여러 차례 찍혀 있는 것 아닌가.

연락해보니 10여 년 전 지역신문에 있을 때부터 형님 동생 하며 지내온 파평면 금파리의 김 아무개 씨로, 내용인즉 금파리 김영규 씨의 권수목장 젖소에 전염병이 생겨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서 25일 혈청검사를 한 결과 3년 전 대만에서 발생한 구제역과 거의 같은 전염병으로 조사됐다는 것, 그래서 목장의 소 15마리를 살처분해 매립하기로 했다는 것, 그럼에도 관계당국은 철저한 보안만 강조하는데 그렇게 쉬쉬하고만 넘어갈 일 같지 않다는 제보였다.

우선 현장부터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에 급히 파평면을 향해 달렸다. 그러면서 시청 농축산과로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묻자 담당자는 말꼬리를 흐리며 사회산업국장이 나와 있으니 직접 통화를 하라는 것이었다. 최익수 사회산업국장이 일요일임에도 농축산과에 나와 있다는 사실이 직감적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게 했다. 급히 본사 데스크에 전화를 걸어 정보 보고부터 했다. 데스크의 김갑동 차장도 뭔가 있다고 판단됐는지 좀 더 정확한 취재와 계속적인 상황 보고를 지시했다.

문제의 금파리에 도착하니 이미 마을 입구에 ‘수포성 질병 발생 출입금지구역’이란 푯말과 함께 빨간띠의 줄이 쳐져 외부인 출입이 전면 통제되고 있는 동시에 방역복 차림의 검역 관계자들이 마을 전체를 소독하며 드나들고 있었다. 또 오후 3시가 넘어서는 권수목장의 소 15마리가 차례로 살처분돼 인근 사격장 부지에 매립되고 있다는 생생한 내부 상황의 제보가 있었다.

하지만 금파리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파평면사무소로 달려온 파주시 농축산 관계자들은 상황 설명은커녕 ‘어떻게 알고 왔냐’, ‘금파리 일이 보도되면 축산농가는 물론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보도를 자제해야 한다’는 당부 일색이었다.

어쨌거나 ‘지역사회 발전’을 내세운 관계자들의 보도 자제 요청과 ‘철저한 예방과 확실한 대책의 강구’를 위해서도 신속한 보도가 필요하다는 본사 데스크의 주장 사이에서 심적 갈등이 적지 않았다. 그 때문에 본사 데스크에서 ‘특종은 아무나 하는 것이냐’, ‘왜 그리 배짱이 없냐’는 질책까지 들어야 했다.

오후 5시 경금파리현장에서 추가 제보가 들어왔다.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마을에 있는 축산농가 4가구의 젖소 90두를 밤새도록 살처분해 인근 야산에 묻기로 했다는 지시가 내려왔다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을 전해 들은 본사 데스크에서는 특종이라고 판단하고, 타 신문에 눈치채이는 일이 없도록 함구령을 내렸다.

이렇게 해서 ‘젖소 수포성 전염병 국내 첫 발생’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27일자 사회면 톱으로 보도되자 여파는 적지 않았다. ‘전염병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면 그때는 책임지라’는 식의 항의 전화가 연일 거듭되었다. 물론 사실에 근거한 기사였다고 자부하지만 그래도 축산농가에 대해서는 뭔가 죄스러운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최근 파평면 현장으로 매일 달려가 축산농가의 어려움을 보도하는데 주력하는 것도 그래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