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기자에게 최초의 퓰리처상 수상의 영예를 안겨준 미국 AP통신의 ‘노근리사건’ 보도는 취재기자는 물론 자료와 역사지식에 해박한 한 ‘조사전문기자’의 활약이 돋보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퓰리처상 수상자인 AP통신 서울지국 최상훈 특파원이 <기자통신> 3월호에 쓴 취재기를 보면 이같은 사실이 잘 나타나 있다.
97년 8월 노근리 피해자들은 주한미국대사관 및 한국정부에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당시 주한미군배상사무소는 해당사건을 자행한 것으로 지목된 미 제1기갑사단이 당시 노근리 인근에 주둔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하였다. 최 기자는 이같은 사실을 본사에 송고하였다. 그러나 이같은 미군의 주장이 미심쩍다고 생각한 최 기자는 독자적으로 조사를 하였고, 최 기자의 기사를 본 뉴욕 본사의 국제담당 부편집장 케빈 노블릿과 탐사보도 편집자인 봅 포트가 이 기사에 관심을 가지고 가담하였다. 이들은 AP의 ‘조사전문기자’인 랜디 허섀프트를 미 국립문서보관소에 급파, 제1기갑사단과 제25보병사단이 노근리 주변에 주둔했음을 확인했다. ‘노근리 보도’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AP본사는 ‘조사전문기자’ 허섀프트에게 여기자 1명을 추가로 배정하여 미 국립문서보관소의 수백 상자의 관련자료를 뒤지기 시작하는 한편 정보공개법에 의거, 해당 부대의 명부와 각 예하 중대의 위치를 보여주는 일석점호보고서를 요구했다. 이 자료들을 토대로 참전자들의 인터뷰가 시작됐다.
한편 ‘조사전문기자’ 허섀프트의 자료조사는 계속됐다. 그는 트루먼도서관에서 미8군 관련기록을, 펜실베니아주 칼라일 미 육군전사연구소에서 50년도 당시 육군교범과 관련규정을 찾아냈고 한국전 미 군사관(軍史官)의 자료도 찾아냈다. 또 콜롬비아대학 도서관에서 한국전 당시의 잔학행위에 관한 미 상원 청문회 사본을, 뉴욕 공공도서관에서는 한국전에 관한 책을 구했다. 그는 한국전 당시 발행된 미국과 유럽의 신문을 모조리 뒤졌으며, 당시 발효 중이던 법률정보와 전쟁범죄 관련 기사 및 논문을 넥시스, 렉시스 DB를 통해 입수하였다. ‘조사전문기자’ 허섀프트는 노근리와 관련한 동서고금의 자료를 거의 섭렵한 셈이다. 취재기자 못지않게 ‘조사전문기자’ 허섀프트의 활약이 눈부셨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수 년 전 미국<워싱턴포스트>를방문했을 때 그곳 취재시스템이 우리와 크게 다르다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곳 역시 취재기자와 조사전문기자, 때론 변호사까지 가세하여 하나의 팀을 이뤄 심층취재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미국에서 탐사보도가 시작된 것은 70년대의 일이다. 한국 언론계에서는 이를 이론으로만 받아들일 뿐 활용하는 것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는 우리나라의 신문들이 ‘하루살이’에 급급한 나머지 큰 기사를 생산해내려는 의지가 부족한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조사전문기자가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된다.
국내 대부분의 언론사는 조사기자를 취재에 활용하기는커녕 사내 도서관의 사서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다. 물론 기존 대부분의 조사기자들이 취재경험도 부족한데다 AP통신의 ‘조사전문기자’처럼 탁월한 자료조사 능력이나 역사적 지식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대로는 곤란하다. 이들은 대개 대학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했고, 또 언론사에서 수 년씩 근무하면서 기사감각을 키운 인재들이다. 재교육을 통해 얼마든지 ‘조사전문기자’로 키울 수도 있다고 본다. 지금 한국 언론계가 기자들의 전문화를 외치면서 그나마 전문성이 있는 조사기자들을 방치해두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한국 언론계는 조사기자들을 전문가로 키워 이들을 취재현장에서 활용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해야 할 때라고 본다. 노근리사건 보도 같은 것을 또다시 외신에게 빼앗길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