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로비 의혹’이라는 희대 사건의 주인공 린다 김을 직접 인터뷰, 9일자 한국일보가 단독 보도하기까지는 적진침투와 같은 작전이 필요했다. 보도 후 반응 역시 “도대체 어떻게 들어간거냐”는 것이었다. 실제로 대문을 철통처럼 지키던 기자들 앞을 버젓이 지나 린다 김 인터뷰를 쓰기까진 극적인 상황의 연속이었다.
가장 큰 공은 8일 린다 김과 그의 변호사를 설득, 직접 인터뷰를 약속 받은 사회부 기자들이었다. 사회부 이주훈 기자는 린다 김과 3시간 동안 전화인터뷰 끝에 편지유출의 단서를 잡았고 이양호 씨에 대한 반응을 육성 그대로 담았다. 남은 것은 ‘린다 김은 정말 어떻게 지내고 있나’를 눈으로 확인하는 일이었다.
린다 김 집 앞을 지키는 기자들의 의심을 덜 받고, 린다 김과 터놓고 이야기하기엔 여기자가 적합하다는 게 사회부 데스크의 판단이었다. 이에 따라 내가 린다 김의 동생 귀현 씨를 만나 집에 들어가게 됐다. 논현동 린다 김 자택 근처 호텔에서 오후 8시10분께 귀현 씨를 만났다. 김씨는 아는 동생들이라며 3명의 남자와 함께 나왔고 나는 이중 한 남자의 부인으로 행세하며 린다 김의 약을 지어 병문안 온 것으로 입을 맞추었다.
김씨는 한국일보 초판 인터뷰기사를 본 타사 기자들의 원성이 높다며 조금 있다 들어가자고 했다. 차까지 밀려 집에 도착한 게 9시쯤. 차가 골목에 들어서는 순간 기자들이 차 안을 들여다보며 어떤 관계냐, 뭣때문에 왔느냐고 캐물었다. 나는 준비해 간 선글라스를 낀 채 개의치 않고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나오는 건 훨씬 힘들었다. 인터뷰를 마칠 즈음 집중적으로 터뜨린 카메라 플래시가 커튼을 쳐놓은 거실 창 밖으로 새나간 게 문제였다. 누군가 집안에서 취재를 하고 있다는 낌새를 알아채고 대문 밖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일단 나오지 말고 기다리라”는 캡의 지시가 핸드폰으로 떨어졌다. 편집국에서 나(정확히 말하면 린다 김을 찍은 카메라)를 무사히 빼내올 묘책을 짜내기 위해 골몰했다. 나는 나대로 뒷문, 차고, 옆집으로 나갈 길이 없나 알아봤다. 그러나 마감시간은 다가오고, 정면돌파 외 다른 길은 없었다. 귀현 씨가 태연히 대문을 연 뒤 “도대체 왜 난리들이냐”고 소리를 질러 분위기를 잡아줬다. 그리고 나서 함께 나선 남자에게 시선이 집중된 사이 나는 재빨리 대기해 있던 차에 올라탔다. 수십 번의플래시가터졌고 누군가 내가 앉은 쪽의 차문을 열었다. 그대로 출발. 뒤따라오는 차는 없었다. 회사에 도착한 것은 밤11시10분. 사진은 제대로 찍혔을까? 카메라를 사진부에 넘겨주면서 여전히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얼마간의 초조가 흐른 후 디지털카메라를 컴퓨터에 연결한 사진부장이 ‘OK’를 연발했다. 함께 지켜보던 편집국 기자들도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보도 후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만나 보니까 정말 어떤 사람인 것 같아?”라는 질문이었다. 린다 김은 확실히 단순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자신의 말대로 “로비스트로서 타격을 받고 한 여성으로서 자존심을 구긴” 상황에서도 삼겹살을 찾고 장신구며 화장을 다 했을 만큼 여유있고 건강하고 생활력이 강했다. 남들에게 자신이 비치는 모습에 대해 신경을 썼고 당당해 보이려 애썼다. 대답하고 싶지 않은 건 머뭇거리거나 숨기지 않고 잘라버리는 식이었다. 말하는 방법, 사람을 만나는 기술이 발달한 여성이었다. 고급 장식장을 배경으로 소파에 앉아 담배를 든 린다 김의 사진(한국일보 1면 보도)은 이러한 그의 성격과 직업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