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다고 돌아올 수 없다는 걸 모르겠는가. 하지만 초등학교 5학년생 빛나는 상여를 뒤따르며 연신 “아빠, 돌아와”, “아빠, 가지마”라며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잔뜩 찌푸린 하늘에 내리다가 그치곤 하던 비처럼 동료들도 눈물이 마를 즈음이면 다시 울었다. 고 홍창표 전남일보 기자의 영정이 마지막으로 편집국 자신의 자리에 머물렀을 때에도 동료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5월 30일 오후 3시 경 고 홍 기자는 선산에 묻혔고 고인을 기억하는 동료들은 이제 그를 이야기할 것이다.
이렇게 또 한명의 기자가 떠났다. 물론 기자들의 업무난과 그에 따른 과도한 스트레스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더 나가면, 기자들의 과로사 역시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근무여건 개선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를 구문으로 돌릴 일은 더더욱 아니다. 광주지역의 한 기자는 “고인의 죽음이 91년 강경대의 그것처럼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당시 그의 죽음이 또다시 전국에 거센 민주화 열풍을 불러온 것처럼 고인의 죽음도 언론계에 근무여건 개선의 절실함을 확산시키는 경종이 되길 바란다는 말이었다.
장례에 참석한 많은 기자들은 한결같이 남의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어쩌면 동료의 죽음 앞에서야 한 회사의 종사자가 아닌 ‘같은 기자’임을 자각하는 현실에 가슴 한켠 씁쓸함을 곱씹어야 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