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대의를 위해 보도를 자제하는 게 옳은 것인지, 이를 무시하는 게 옳은 것인지 혼란스럽다." 남북정상회담을 취재한 한 기자는 이렇게 토로했다. 대북사업을 추진할 정부와 관계는 물론 언론의 ´제 역할 찾기´가 시급하다는 말이다.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의 변화 움직임과 함께 언론도 안팎에서 남북 관련보도를 둘러싼 새로운 시험대에 올라서고 있다. 먼저 이번 정상회담 과정에서 언론은 남북 모두에 여전히 부담스러운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는 분위기가 적잖이 전해졌다.
실제로 북측의 한 관계자는 "남한보다 경제수준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를 자꾸 부각만 하려든다. 따지고 보면 다 같은 민족의 망신 아니냐"며 남측 언론에 불만을 표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17일자 조선일보에서 평양취재 기자가 밝혔듯이 북측은 실무접촉 과정에서 조선일보와 KBS의 취재단 합류에 앞서 ´납득할 만한 조치´를 요구하기도 했다. 물론 이같은 반응은 그동안 대북보도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돼온 미확인보도, 추측보도 남발 등 언론이 자초한 바 크다.
실제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기사는 지난 4월과 정상회담을 앞둔 이달 초 이미 보도가 ´돼버렸으며´ 정상회담 과정에서 핫라인 설치, 연락사무소 개설 역시 현재로선 추측보도로 인한 오보로 판명났다.
반면 정부의 보도자제 요구가 지나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한 취재기자는 정상회담에 앞서 임동원 국정원장의 방문단 합류를 오프로 요구한 것을 예로 들었다. 이 기자는 "정부측이 애초 임 원장은 전략적 차원에서 가는 것이며 북측의 요청도 있다고 해서 이를 받아들였다"면서 "정작 김정일 위원장 앞에 함께 서있고 화면에도 다 나가는 것을 보고 황당했다"고 말했다. 또 김대중 대통령이 육로(陸路)로 돌아오려 했다가 공로(空路)로 변경됐다는 발표와 관련 박지원 문화부장관은 15일 정치부장단과 만난 자리에서 "애초부터 공로로 정해져 있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태도에 대해서는 언론계 내부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한 언론사 간부는 "보안과 경호 문제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사안이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며 "사소한 부분까지 과열 경쟁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에 언론은 더 이상 협조할 것이 없을 정도로 협조했다"는 입장도 있다. 과열·추측보도에 대한비판과별개로 정부 태도도 아울러 지적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양상은 정부 관계는 물론 언론 내부에서 먼저 보도준칙 차원을 넘어선 대북보도 관행의 새로운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한 기자는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 두드러지게 거슬리는 기사는 별로 보지 못했다. 하지만 언론의 냄비근성을 생각해볼 때 남북 간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경우 어떻게 보도할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언론이 기존 보도관행을 되풀이할 여지는 여전히 남아있다는 설명이다. 이 기자는 "공동선언 채택 이후 연방제와 연합제에 대한 명쾌한 해설을 찾아볼 수 없었던 점도 언론이 그동안 남북관계를 둘러싼 관심이 얼마나 부족했던가를 드러내는 단적인 예"라고 덧붙였다.
남북정상이 첫 만남으로 공동선언이라는 성과를 이끌어낸 이후 언론이 대북보도에 있어서 어떤 성과를 이루어낼 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