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십자회담에서 공동취재단 일원으로 대표단에 참가한 조선일보 기자의 취재가 북측의 거부로 결국 무산됐다. 남북관계와 언론을 둘러싼 또하나의 숙제가 던져진 셈이다.
현재로선 북측의 취재거부는 조선일보의 보도 논조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 기자들은 지난달 30일 채택한 결의문에서 ‘북한의 언론 길들이기’로 규정하며 ‘상호이해에 기초한 6·15 남북공동선언의 기본정신과 언론자유를 무시한 조치’라고 비난했다.
조선일보는 같은 날 사설을 통해서도 ‘정부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해당 언론사에 떠넘기거나 북한에 사정할 것이 아니라 확고하고 일관된 취재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밝혔다.
북측 조치에 대한 언론계 반응은 원칙적으로 비판적인 입장에 기대있다. 조선일보의 논조와는 별개로 공동취재단의 일환으로 간 데 대해 취재를 거부한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이다. 한 언론사 간부는 “애초 공동취재단 구성을 거부하든지, 끝까지 설득하든지 했어야지 너무 끌려 다녔다. 정부가 무책임한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조선일보의 한 기자는 “이번 일이 선례가 된다면 언론의 가치판단에 따른 체제비판은 힘들다는 말이 된다”고 언급했다.
물론 반론도 있다. “무슨 근거로 ‘북이 절대 취재를 거부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가”라는 반문이다. 한 기자는 “최고 권력자를 물러나라고 요구한 언론사의 취재를 거부한 것은 북 당국으로선 충분히 내릴 수 있는 결정이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단순히 정부책임만을 거론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이번 적십자회담 과정에서 대표단은 2차례 비공식 접촉을 갖고 판문점을 통해서도 조선일보 기자의 취재허가를 북측에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지난 30일 박준영 청와대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충분한 취재기회가 보장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같은 원칙이 순탄하게 지켜지기는 힘들어 보인다. 일단 북측의 언론에 대한 경계심이 쉽게 풀어질 것 같지 않다.
먼저 이번 적십자회담 합의에서 이산가족 방문단 가운데 취재진이 20명으로 결정된 것과 관련 남측은 애초 30명을 제시했으나 북측 요구대로 20명에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앞선 회담 준비과정에서 북측이 회담 장소를 판문점에서 금강산호텔로 수정 제의한 것을 두고 언론의 취재제한을 의식한 조치였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제기되기도했다. 남북 당국의 방침과는 별도로 언론의 보도태도에 대한 문제가 아울러 거론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실적으로 남북관계에 미치는 언론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북측의 취재거부가 남북화해 정신에 어긋난다고 비판하는 기자들도 조선일보의 보도 역시 남북화해 정신에 맞게 고쳐야 한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 이우승 방송진흥원 책임연구원은 지난달 9일 방송진흥원 간담회에서 “예를 들어 북의 식량난을 있는 그대로 보도한다해도 지금의 남북관계에 비춰보면 그렇게 적절한 보도로 평가할 수 없다”면서 “상호이해와 통일지향이라는 목표에 부합하는 새로운 의미의 객관성이 요구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통일부의 한 출입기자는 “당장의 논란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면서 “남북 회담과 그에 따른 취재가 계속될 것이니 만큼 언론 역시 이 과정에서 꾸준히 신뢰를 쌓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