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무늬만 독립언론이었다. 지난달 27일 문화일보가 최고경영진의 일원으로 전 현대건설 부사장을 선임한 것을 볼 때 독립언론에 대한 기대가 일거에 허물어지는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현대가 데려온 것이 아니라 문화일보가 인재를 찾다보니 현대에서 적임자를 데려오게 된 것이라지만 재벌신문으로 다시 돌아가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
문화일보를 포함하여 일부 재벌신문들이 독립언론으로 재출범한 것이 불과 2년 반 전의 일이었다. 서로가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과거 재벌이 가졌던 상당한 몫의 지분은 거의 없어졌다. 대신에 종업원 지주제 또는 우리사주조합의 형태로 새로운 소유구조가 탄생했다. 앞으로 재벌들이 확실히 신문사업에서 손을 떼고 다시 손을 대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오히려 새로 출범한 독립언론들이 IMF 경제위기 속에서 험난한 신문시장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지 걱정하는 분위기였다.
많은 독자들은 독립언론의 출범으로 이 신문들이 새로운 자리매김을 하고 진일보한 모습으로 독자들에게 더욱 가까이 가는 좋은 계기로 생각했다. 신문경영에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그래도 그 기회를 언론의 정도를 향해 가는 밑거름으로 삼기를 기대했다. 수많은 독자들이 독립언론 출범에 격려와 지지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문화일보가 자주 내세우는 ‘퀄리티 페이퍼’라는 목표도 그런 노력 속에서 이뤄져야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그동안 독립언론으로 수없이 자처하던 문화일보가 재벌신문의 꼬리를 완전히 잘라내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독립언론으로 출범한 이후에도 문화일보가 현대그룹에 대한 편향적인 태도를 일부 보여왔을 때 많은 독자들은 불만스럽지만 이를 신문경영난에 따른 불가피한 현실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문화일보의 이번 인사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한마디로 재벌신문으로 역행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것은 그 무렵 독립언론으로 함께 재출범했던 경향신문이 얼마 전에 최고경영자를 공개채용했던 것과는 정말 비교되는 모습인 것이다. 그동안 독립언론으로의 행보에 대해 뜨거운 성원과 관심을 보여준 수많은 지식인층과 독자들에 대한 일종의 배신과 기만행위일 수밖에 없다. 독립언론이란 게 독자를 유혹하기 위한 간판은 아니다. 차라리 옛 재벌신문의자리로되돌아가는 게 오히려 더 솔직한 자세가 아닌가 생각한다.
한편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재벌신문으로 역행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신문사 내부에서 저항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노조를 포함하여 종사자 모두가 옛 재벌과의 연계를 암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우리사주조합 등 소유구조의 개편으로 옛 재벌과의 계열관계가 끊어졌다고 해서 독립언론이 되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언론종사자들이 독립언론에 대해 치열한 인식을 갖는 것이다. 독립언론을 자처한다면 재벌로부터의 독립이 과연 무엇을 얻기 위한 것이었는지를 가끔씩 되물어보기도 해야 할 것이다.
지금 생존에 대한 절박한 심정만 두드러지고 있으며 그 결과 독립언론의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을 분명히 자성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