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전문위원 자격으로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한 사람들은 일선 기자 보다는 ‘외부 인사’가 먼저였다. 이들이 경험적으로 말하는 전문기자제에 대한 성과와 과제는 그동안 언론계 안팎에서 제기돼 왔던 여러 문제들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
전문기자의 외부 충원은 지난 92년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에서 시작됐다. 이때 의학, 과학 등의 분야에서 전문기자로 뽑힌 기자들은 일반 기자들과 똑같이 6개월 수습과정을 거쳤다. 별다른 교육 프로그램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부분은 지금도 크게 다를 바 없다.
한 전문기자는 “당시엔 감히 전문가 티를 내기도 힘든 분위기였다. ‘박사라고 기사 잘 쓰냐’는 말도 듣곤 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때문에 이들에게서 기사 작성의 고충을 듣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한 전문기자는 “한달 정도 경찰서를 전전한 것 외에 교육은 데스크의 코멘트 정도였다. 초기 기사는 사실 흉내내는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사실 이같은 상황은 일반 기자가 아닌 외부에서 경력을 인정받은 인사를 채용했다는 점에서 생기는 ‘대우’의 애매함도 개입된다. 한 전문기자는 이와 관련 “데스크로서도 후배기자 대하듯 막 대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런 고려가 일반적인 기자교육을 시키는 데 곤란한 점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반면 담당 분야에 사건이 생겼을 때 회의에 참여, 의견을 개진하고 취재를 지원하거나 자체적으로 기획안을 마련해 기사화가 결정되면 취재에 나서는 활동 양상을 고려할 때 언론 안팎의 현장 적응을 위한 교육이 미비한 점은 전문‘기자’로선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음성직 중앙일보 전문위원은 “94년 입사 당시 시화호 사건이 크게 터졌는데 사실 전문가 시절에 그 문제는 상식이었다. 누가 크게 쓰니까 그게 특종이 되더라”며 “전문지식도 중요하지만 역시 기자로서 문제의식이 승부를 가른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실제로 중앙일보는 대대적으로 전문가들을 영입한 지 3년만인 지난 97년 전문위원실에 있던 전문위원들을 편집국 해당 부서별로 배치해 현장 투입을 강화하기도 했다.
전문기자들은 올들어 외부 전문가를 채용하기 시작한 방송의 경우 신문보다 상대적으로 전문성을 발휘하기 어려운 매체로 인식하고 있다. ‘1분 30초~2분 정도의 짧은 리포트 안에 어떻게 전문성을 녹여낼 수 있겠는가’라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SB는기상, 의학 외에 정보통신 전문기자를 선발하려 했으나 결국 유보하기도 했다.
SBS는 현재 의학전문으로 들어온 김현주 기자가 수습과정을 밟는 중이며 정규철 MBC 의학 전문기자는 이달 중 첫 리포트를 앞두고 있다. 정 기자는 이같은 지적에 대해 “어차피 처음 시작하는 마당에 한계는 누구나 안고 가는 것 아닌가. 능력이 얼마나 받쳐주느냐의 문제”라며 “기회가 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대적으로 방송의 파급력이 더 크다는 점도 매력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MBC는 전문기자 활용을 위해 4~5분의 대담이나 시사프로그램에 관련 아이템을 선정해 투입하는 방안 등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기자의 외부 충원이 계속되는 것은 전문성 제고 요구가 계속되는 반면 아직 내부의 양성 시스템이 자리잡지 못한 데 따른 현상이라는 시각이 많다. 전문성 있는 해설과 사안의 경중에 대한 신속한 판단, 해당 분야의 다양한 취재원 등 여전히 강점으로 꼽히는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부 양성을 포함해 전문기자제가 자리잡기 위해서는, 기본 방침은 물론 운영 면에서도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는 지적이 높다.
먼저 스트레이트 등 일반기사 부담을 줄이고 기획과 지면 배정을 최대한 보장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홍혜걸 중앙일보 의학 전문기자는 “중앙일보의 경우 그동안 진일보한 점이 있다면 이제 전문기자가 기사 아이템만 있으면 지면은 항상 열려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데스크나 기자들의 이해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최경환 한국경제 전문위원도 “회의에서 주문한다고 해서 전문적인 기사가 바로바로 나오는 건 아니다. 편집국장을 비롯한 데스크진이 먼저 전문기자에 대한 전향적인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박사 위주의 채용도 문제로 꼽힌다. ‘브랜드’에 얽매여 전문기자 충원 경로를 제한할 필요는 없다는 지적이다. 홍혜걸 기자는 “그동안의 선발 양상은 일선 기자들에게도 ‘전문기자는 박사’라는 인식을 가져다준 측면이 없지 않다. 사실 언론사 입장에서 본다면 전문가로서 지위나 경력 보다 전문가적인, 심도 있는 기사를 쉽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게 중요하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전문기자 충원 방식을 다변화하고 선발한 다음에는 담당 분야에 대한 기획과 지면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일반 기자와 전문기자를 똑같이대우해서는안된다. 기사를 통한 평가는 냉정히 하되 업무 자율성은 충분히 보장해줘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되기도 한다. 급여수준이 아닌 근무여건에 대한 문제제기다.
한 전문기자는 “때로 잡다한 단신거리도 챙겨야 하고, 언론사 풍토에 적응하기 위해서 일부러 자리를 지킨다거나 하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활동에 제약 받는 바도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며 “회사에서 일반 기자들과 똑같은 근무방식을 요구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한편 전문기자들 대부분의 의견이 일치하는 사안 가운데 하나가 일선 기자들의 전문기자 양성이다.
최경환 한국경제 전문위원은 주요 조건으로 연봉제를 비롯한 ‘메리트 시스템’ 정립을 강조했다. 최 위원은 “기자들이 정해진 경로를 포기하고 전문성을 택한다면 거기에 상응하는 보상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라며 “그렇지 않다면 결국 승진을 위해 다양한 부서 경력을 선호하는 풍토가 고쳐지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내부 기자들의 전문기자 양성은 같은 맥락에서 그만큼 실행을 더디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여전히 기자직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한가지 ‘전공’을 택한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반 기자’나 내부에서 전문성을 모색하는 기자들의 고민은 더 깊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