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법조비리 검사 연루 보도에 대한 검사들의 집단 명예훼손 소송에서 법원이 사실상 검사들의 손을 들어준 데 이어, 군 판사들이 언론을 상대로 제기한 집단 명예훼손 소송에서도 이들이 일부 승소했다. 이에 따라 언론계에서는 사법 집단에 대한 감시 위축 우려가 심화되는 한편 전체 언론계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서울지법 민사합의25부(재판장 안영률 부장판사)는 12일 국방부 군사법원 판사 5명이 “병무비리 수사와 관련 군 사법기관 내 비리가 만연하다는 보도로 명예가 훼손됐다”며 경향신문과 문화일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경향신문에 “2500만 원을 지급하고 정정보도문을 게재하라”고 판결했다. 서울지법은 “피고는 군 사법기관 전반의 비리의혹을 제기했고 이름도 명시하지 않았다고 하나 병무비리 재판과 관련 원고들을 특정할 수 있는 만큼 피해자 자격이 인정된다”면서 “군 판사 금품수수 내용은 국방부 관계자 인터뷰 외에 증거가 없는 만큼 허위기사”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서울지법은 지난달 28일 ‘대전 법조비리 검사 연루’ 보도와 관련 MBC에 검사 1인당 1000만 원씩 총 2억2000만 원을 지급하라는 강제조정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경향신문은 지난해 10월 13일 ‘군 사법 전면개혁’ 기사와 관련 기사 등을 통해 국방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 일부 군 검찰 관계자들이 금품을 받고 구형량을 낮추거나 군 법원이 형평성을 결여한 판결을 양산하는 등 군 사법부의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전면개혁을 실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같은 날 문화일보도 ‘군 사법 확 뜯어고친다’ 제하 기사를 보도했다. 국방부 군 판사 5명은 이에 대해 같은 달 22일 “두 신문사가 합리적인 근거나 정확한 증거, 충분한 인터뷰 없이 보도해 군사법원이 병무비리의 온상인 양 보도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법원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하더라도 뚜렷한 근거나 사례를 제시하지 않으면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린 셈이다. 재판부는 문화일보 보도에 대해 “‘비리의혹이 있다’는 등의 표현은 통상적인 의혹제기의 범주를 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며 소송을 기각했다. 문화일보는 사법개혁 추진과 관련 “병무비리에 연루된 군의관들이 죄질에 비해 관대한 구형량과 판결을 받는 과정에 일부 군법무관이 개입하는등비리의혹이 짙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라고 보도했다.
해당 기자인 김종훈 경향신문 사회부 기자는 “당시 국방부 고위 관계자의 말을 같이 들었던 타사 기자들의 진술서도 법원에 제출했으나 결국 인정되지 않았다”면서 “수사권도 없는 언론에 뇌물 수수 여부를 밝히라는 요구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앞으로 자체 취재를 통한 비판과 감시기능은 포기하고 관급기사만 쓰라는 얘기냐”는 기자들의 불만이 높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향신문과 한국일보 등도 14일 사설을 통해 ‘공직자의 명예훼손 문제는 일반인과 다른, 보다 엄밀한 기준을 적용해 언론의 감시·비판기능이 위축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경향신문은 판결문을 송부받는 대로 항소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