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한 정보통신 전문기자는 결국 벤처행을 택했다. 출입처까지 맡다보니 새 우표 나오는 소식까지 챙겨야 했고, 스스로 남사스럽다며 ‘전문’을 빼달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라는 하소연을 듣기도 했다.”
“편집국의 한 선배는 20여년간 한 분야를 취재해온 전문기자였다. 어느날 그 부서 데스크로 외부에서 후배뻘 되는 사람이 들어왔다. 후배의 데스크를 거치며 특별한 보직 없이 전문기자로 남는 모습이 너무 왜소해 보였다.”
일선 기자들의 전문기자에 대한 불안한 기억들이다. 아직까지 기자들에게는 전문기자제 필요성에 대한 ‘체감도’ 보다 현실적인 한계와 그에 따른 유보적 전망이 더 깊어 보인다.
물론 지금 이 시간에도 전문기자를 준비하고 지망하는 기자들이 있다. 당연히 이들의 전망은 전문화라는 대세에 무게 중심이 가있다.
정보통신 전문기자를 지망하는 한 기자의 분석도 “전반적인 경향은 어차피 전문화 쪽으로 가고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했다. 이 기자는 “미국의 경우에도 유력지에 있던 기자들이 자기 소양을 쌓아 전문잡지로 길을 돌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면서 “기존 언론계 풍토에선 생경했던 기자 이동도 불과 몇 년 사이에 활성화되고 있잖은가. 전문기자제 역시 확산돼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국내에서 전문연수를 받고 있는 한 기자도 “당장은 전례가 없다지만, 어차피 기자사회도 일정부분 시장논리를 따를 것”이라며 “그렇다면 자신을 특화 시킬 ‘상품성’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아울러 이들 대부분은, 전문기자는 외부 영입 보다 일선 기자들이 도전하기에 더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전문기자라도 여전히 언론 본연의 비판·감시 기능에 충실한 시각이 중요하다는 점에서다.
다른 한편 그 ‘활용론’에 대해서는 논박이 오가는 부분도 있다. 전문 분야에 관련된 사안이 항상 터지는가. 그렇지 않다면 평소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내부에서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는 한 기자는 “내 분야에서 열심히 다룰 만한 사건이 터지는 건 1년에 한 두 번 정도이기도 하고 일반 기자 능력을 ‘1인분’으로 친다면 0.5인분 안팎을 소화하는 경우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일 터졌을 때 실컷 써먹으면서 평소에 일이 없어 보인다고 이것저것 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전문성을 유지하고 재충전할 기회를 준다는차원에서라도전문기자선발에 따른 일정 부분의 손실은 감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반면 또다른 한 기자는 “어차피 인력이 부족하다면 지원은 불가피하다. 조직논리를 무시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라며 “이제 시작하는 마당이기 때문에 그런 문제는 논의할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분간 감수하고 가야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논란의 다른 한편에서는 “당장 회사는 일선 기자들에게 2인분, 3인분의 역할을 기대하는 판국에 전문기자를 키운다고?” 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전문기자는 일선 기자들에게 더 유리한 길이라는 앞서의 ‘후한 점수’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을 주저하게 만드는 고민은 이처럼 현실에서 출발하고 있다. 과연 이것이 ‘제대로 준비된 돌파구’냐 하는 것이다.
한 기자는 “최근에 전문기자제에 대한 움직임이 활성화하고 있지만 그 영속성이나 전망에 대해선 아직 유보적”이라며 “경영진이나 편집간부들의 성향에 따라 언제든지 이슈에서 제외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또다른 기자는 “92년 처음으로 전문기자를 선발했을 당시 멤버들 가운데 아직까지 남아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나마 일선기자로 활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신중론을 펼쳤다.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역시 사주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자조 섞인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보다 현실적으로 데스크와 전문기자, 두 길의 입지와 위상에 관한 문제도 아울러 제기된다.
한 기자는 “연조가 쌓이고 데스크가 되면 기획하고 후배들을 지휘하면서 지면 제작하는 게 나름의 재미이기도 하다. 반면 전문기자는 원 오브 뎀(one of them)일 뿐”이라며 지금의 조직 풍토 속에서는 입지가 왜소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다른 기자는 “하다못해 부장, 차장 등 보직 있는 사원 보다 보직 없는 사원 정년이 더 짧다”며 “계속 취재하고 기사 쓰는 기자의 길은 여전히 불안한 형편”이라고 말했다.
기자직의 전망에 대한 불투명 속에서 ‘한 길’을 택한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라는 상황판단인 셈이다.
외부에서 영입된 한 전문기자는 이를 ‘배팅’이라고 표현했다.
“외부에서 온 전문기자들은 솔직히 실패하면 돌아갈 영역이라도 있다. 일반 기자들의 경우 정해진 경로를 밟고 올라갈 수 있는데 일부러 한 분야를 선택해 자리잡기에 실패한다면 대책 없는 일 아닌가. 불안할 수밖에없을것이다.”
이때문에 기자들은 전문기자제가 기자직의 새로운 활로를 뚫는 방안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지위와 역할을 비롯한 활용방안, 안식년제, 연수를 비롯한 재교육 기회 부여 등 제도적인 지원책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기자는 “그동안 몇몇 언론사에서 내부적으로 희망분야 지원을 받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일선 기자가 전문기자로 성장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경우를 찾기 힘들다는 사실은 무엇을 반증하는가”라고 물었다. 이 기자는 “언제나 제도 탓만 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전문기자제는 현실적으로 사주를 비롯한 경영진, 간부들의 확고한 실행의지와 제도적 장치가 전제돼야 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현재로선 ‘도저히 데스크가 될 가능성이 없다’거나 ‘정말 기사쓰는 기자로 남고 싶다’는 판단 아니면 선뜻 꺼내기 힘든 카드”라는 한 기자의 말처럼 여전히 전문기자는 기자들에게 ‘결단’을 내리기에 부담스런 과제로 남아있다. 그래서 일선 기자들은 고민을 접어가며 하루하루 하던 방식대로 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야할 길?’이라는 조심스런 전망에서 출발한 전문기자제는 기자들에게 ‘가볼만한 길’로 인정받기 위한 도상에 놓여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