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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기자제 어디로 가고 있나(4)/ 개인적 취향 따라 자기분야 스스로 결정

부장.국장 등 승진 연연하지 말아야, 자기개발 노력.회사 지원 체제 필수

김상철  2000.11.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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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제도가 아니라 제도화된 풍토다.’

외신기자들이 보는 전문기자제에 대한 발언은 이렇게 요약된다.

전문기자 ‘제도’가 있는 곳은 드물고 전문기자라는 바이라인을 다는 경우는 더더욱 없다고 한다. 하지만 기사에 명시하는 전문기자라는 직함은 없어도 전문기자는 있다. 국내 언론 상황과는 기본적으로 다른 점들이 있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외신기자들이 말하는 전문기자는 ‘판이 다른’ 풍토에서 출발한다.

이금현 이코노미스트 기자는 전문기자로 자리잡는 과정을 이렇게 요약했다.

“처음 기자로 들어오면 여러 부서를 거쳐가며 근무를 하지만 일하다가 자신에게 맞는 분야가 생겨 관련 기사를 계속 써나가고 에디터도 역량을 인정하면 자연스레 전문기자가 된다.”

물론 전문기자로 ‘분화’하는 과정은 여러 가지다. 일반 발생기사를 계속해서 쓰는 기자가 있는 반면 기획·심층취재가 적성에 맞으면 그쪽으로 전문화가 진행된다. 또 해외와 국내 분야의 경우에도 정치, 사회, 국제관계로 경로를 틀거나 경제, 산업 분야를 파고들 수도 있다. 인위적인 제도로서 전문기자는 없다는 것이다.

최상훈 AP통신 기자도 기사에 전문기자라는 직함을 내걸지는 않지만 기술, 종교, 국제문제, 조사 전문에서 자동차, 야구, 농구 전문기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전문기자가 포진해 있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해당 분야에 취재 경험이 있는 기자들 가운데 무엇보다 본인이 원하고 회사도 이를 인정하면 전문기자로 활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AP의 경우 통신사임에도 불구하고 90년대 초부터 탐사보도 전문기자를 양성했다는 점이다. 최 기자는 계약사인 신문사들이 점차 탐사보도 비중을 높여나가자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단행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전문기자 양성이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이유는 인턴제나 상시 스카웃으로 대표되는 ‘기자시장’의 유연성과 데스크, 에디터라는 정해진 ‘상승 경로’에 연연하지 않는 풍토 때문이다.

이금현 기자는 “제도로 전문기자, 비전문기자를 나누기보다는 공채개념을 버리고 수시로 기자를 채용하는 체제로 전환하면서 스스로 전문 분야를 찾아내도록 하는 풍토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상훈 기자도 “국내 언론과 가장 큰 차이점은 누구도 부장, 국장 등 정해진 승진코스를 거쳐야 한다고 여기지 않는다는것”이라며“기자들은기본적으로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자기 분야를 결정해 나간다”고 전했다.

기자이동이 자유롭다보니 자기 상품성을 키워야 하고 그러기 위해 자기개발을 게을리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회사 지원체계도 유연하다. 이코노미스트의 경우 6~7년이 지나면 1년 간 급여가 지급되는 안식년을 주며 본인이 희망할 경우 소속은 그대로 유지하되 급여는 지급하지 않으면서 기간을 연장시켜주는 식이다.

일본의 경우 아사히신문처럼 전문기자제와 유사한 ‘편집위원 제도’를 운영하기도 한다.(아래기사 참조) 배수일 아사히신문 기자는 이와 관련 “통상 20년 이상 재직하면서 특정 분야에 취재력과 필력을 인정받는 기자들이 편집위원으로 활동한다”며 “이들은 대체로 자기 주관이 뚜렷하거나 ‘사내 정치’에서 자유롭고 해당 분야에 축적된 역량을 가진 기자들”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취재기자가 1500여명이 넘는다는 아사히신문의 여건을 고려하면 앞서 미국 언론의 사례와 같이 국내언론 상황과 단순 비교할 수는 없어 보인다. 기자 수만 놓고 보더라도 충분히 고민하고 취재하며 기사 쓸 수 있는 기본적인 여건이 충족돼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를 전문기자로 선택할 것인지,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 이전에 기자 전문화의 여건을 어떻게 갖춰야 할 것인가가 먼저 고민돼야 한다”는 한 기자의 말이 곱씹을만한 지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외신기자들의 일련의 지적은 전문기자제 역시 대부분의 현안이 그러하듯 전체 언론계 풍토나 체질 개선과 함께 가야할 문제라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