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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좌담> 남북보도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기준 아닌 그들 기준 우선 적용해야

정리=박주선  2001.01.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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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 관계가 급진전하면서 대북 보도에 많은 변화가 이뤄졌다. 하지만 여전히 대북 보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담당 기자들과 통일부 당국자 사이의 갈등, 대북 보도에 대한 문제점은 언론계의 당면 과제로 남아있다.

이에 따라 기자협회는 지난 12월 22일 ‘남북관계 보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를 놓고 통일부 출입기자, 북한부 기자, 통일부 당국자와 함께 하는 좌담회를 마련했다.



▲좌담자

△김호성 YTN 통일외교팀 차장 △남광식 연합뉴스 민족뉴스취재본부 북한부 기자 △이제훈 한겨레 정치부 기자 △황하수 통일부 남북교류협력국장

▲사회

△박윤우 협회보 편집국장



사회자=이번 좌담의 주제는 ‘남북관계 보도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그런데 이 주제가 너무 여러 가지 요인이 혼재해 있는 탓에 어디서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할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우선 최근 벌어졌던 통일부 기자실의 양영식 통일부 차관 출입금지 사건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한다.

김호성=이번 경우는 공범이 되자고 한 당사자가 나중에 말을 바꾼 케이스다. 처음 정부에서 엠바고를 제안했을 때 기자실 내에서도 갑론을박이 있었다. 하지만 정부 엠바고를 받아들이면 안된다는 의견은 10∼20% 정도였고, 엠바고를 받아들이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이후 정부 당국자가 납북자 상봉을 시사하는 발언을 국회에서 했을 때도 기자실 내에서는 계속 엠바고를 지키기로 하다가 북한에서 이를 보도하면서 우리도 보도하게 됐다.

북한 보도 전까지 기자실에서는 엠바고를 지키면서 정부 입장에 대해 동조하고자 한 것인데, 정부에서는 지금까지 전혀 해명을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결국 기자실 문에다가 ‘차관 출입금지’라고 써붙였다.

이제훈=예전에는 대북 문제에 대해 정부가 숨기는 게 많아 취재가 어려웠지만 남북정상회담 이후에는 기자들이 움직이면 포착되는 것이 많아졌다. 그래서 정부에서 요구하는 엠바고도 늘어났다. 이번 경우에도 주무국장이 엠바고를 요청할 때 “공무원직을 걸고 부탁한다”고 한 것이었다. 그런데 차관의 발언을 통해 사실이 공개됐다는 건 정부의 속마음이 주무국장 얘기처럼 북의 반응이 있기 전까지 남측에서 보도를 하지 않으려고 한 것인지 적절한 타이밍에 터트려서 정부의 공을 쌓으려고 한 것인지 의심케 한다. 결국 출입기자단과 정부 당국자 사이의 신의문제다.

황하수=정부는 가급적 작은 부분만 얘기하기 바라고 기자들은 충실히 보도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정부가 의도적으로 적절한 타이밍에 터트려 공을 쌓으려고 한 것은 아닐 것이다. 대북 정책은 다른 정책과는 달리 북한이라는 상대가 있다. 더욱이 북한은 사회적 규범을 공유하는 상대가 아니고 독특한 상대이다. 정부는 북한이라는 상대를 우리 국민과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입장인데 양 그룹의 생각이 너무 다르다. 그래서 정부에서 얘기하려고 할 때 선택의 여지가 매우 적어지는 것을 많이 느낀다. 여기서 정부가 언론에 대해 조심스러워 하는 이유가 비롯된다.

사회자=전반적으로 남북문제를 바라보는데 사회적인 컨센서스가 없는 것 같다. 정부도 마찬가지인 것 같고, 그래서 대북 보도에 혼선을 주기도 한다.

이제훈=그렇다. 한국사회에는 남북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컨센서스가 없다.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와 ‘북한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의 화두가 중요한 차이이다. 내 생각엔 북한을 어떻게 볼까를 먼저 생각하고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나중에 생각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북한의 변화 여부와 상관없이 남은 북과 대화를 해야 한다.

과연 남북 화해협력 정책이 같은 민족이고 통일을 위해서만 필요한 것인가. 한국에서 인권을 가장 침해하는 법이 국가보안법이다. OECD 가입국 내에서 사회복지시설이 가장 후진적인 이유도 과도한 국방비 지출 때문이다. 그래서 북과 대화가 필요하다. 오히려 지금 상황에서 연방제 등의 논의는 불필요한 이데올로기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김호성=혼선을 자초하는 커다란 이유는 국정원에 있다. 취재하다 보면 막판에 부딪히는 게 국정원이다. 남북 관계의 특수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게 있다. 예를 들어 정부는 지난 9월 김용순 당비서가 온다는 발표를 연휴 직전까지 붙들고 있다가 갑자기 터트렸다. 대남사업을 관장하는 북한 고위급 인사가 온다는 건 대북관계에 커다란 변화를 주는 일인데 갑작스럽게 연휴 직전에 알리면 일선 기자들은 황당할 수밖에 없다. 자연히 깊이있는 취재를 하는 것도 어렵다.

방북 취재를 갈 때도 배정되는 취재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통일부에 항의해도 소용없는 일이고 결국 국정원이라는 큰 그늘에 들어가게 된다. 정부의 대북정책이 햇볕정책이라는 말 그대로 오픈된 것이라면 국정원도 알릴 것은 알려야 한다.

남광식=기자 집단에서도 통일이나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가 많다. 같은 사 같은 부에 있는 기자들도 시각차가 있다.

전체적인 합의가 없고 그런 상황에서 국민들은 언론보도를 통해 북한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문제는 언론이 ‘북한을 어떻게 보도할 것인가’에 대한 기본적인 논의도 없이 중구난방식으로 보도하는 것이다. 적어도 기자들 내에서라도 워크숍을 열어 총의를 모아가는 과정이 있다면 보도에서 혼란을 줄여갈 수 있지 않을까.

김호성=통일부에서 워크숍이라는 이름으로 기자들과 딱 한번 모임을 가졌다. 지난 4월 이후에는 단 한차례도 대북 정책에 대한 통일부의 정식 브리핑을 받은 적이 없다. 통일정책실에서 실장이 일주일에 한번씩 정규 브리핑을 하기로 돼 있지만 통일 정책의 내용에 대해 브리핑을 한 적이 없다. 큰 그림이 없는 상황에서 기자들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으로 보도하게 되고 결국 오보도 생긴다. 정부의 통일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이런 건 줄일 수 있다.

이제훈=대북 정책의 기본은 국내 여론의 지지이다. 대북 정책을 둘러싸고 국내 여론이 갈려있고, 비판 여론도 많은 현 상황에서 정부는 남남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사회자=우리 사회내에 퍼져있는 남북관계 현상 유지론은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김호성=남북정상회담 이후에 남북 교류는 유례없이 많아졌다. 올해는 관이 주도하는 방향으로 나갔다. 앞으로 민간 학술 교류도 하고, 교류의 폭이 넓어지면 과거보다 자유롭고 다이내믹해지지 않을까. 더 이상 정부의 정보 독점이나 감추기는 안된다. 언론보도가 어렵다면 엠바고를 요구하더라도 사전에 열린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이제훈=지금 한국 사회가 충분히 살만한 나라라면 남북관계도 이대로 좋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불충분하다고 본다. 국방비 지출이 과다하고 주변 곳곳에 이산가족이 산재해 있다. 통일이 아니더라도 남북 대치 상태로 사는 건 좋지 않다.

남광식=공감한다. 아울러 정부는 열린 통일정책을 지향해야 한다. 숨기기보다는 투명해져야 한다.

황하수=남북 관계의 특수성, 특히 북한이라는 특수한 상대가 있다는 점 때문에 정부로서는 제약조건이 많다. 그렇지만 남한 내의 문제에 대해 정부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런데 정부에서 대북 사업을 하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북한에 큰 이익이 가지않느냐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북한에 이익이 가느냐 안 가느냐 하는 생각에 앞서 우리에게 어떤 이익이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대북 사업을 하면 남한의 금전적인 대가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정치적, 안보적 효과는 매우 크다. 이 점은 과소평가되고 북한에 너무 큰 이익을 주는 것이라는 쪽이 부각돼 있다. 통일 비용이 크다고 하지만 분단 비용이 어마어마하다. 이러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것은 정부의 책임이기도 하고, 언론의 책임이기도 하다.

사회자=정부에서 제대로 알리지 못한 측면이 있는 것은 아닌가.

황하수=국민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려다 보면 대화의 상대방인 북한을 자극하게 되는 내용이 필연적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조심스럽지만 앞으로 정부가 피드백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훈=정부가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남한 국민들의 오해를 풀어가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정부가 남한 내에서 대북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이 심하고 반대 여론도 팽배한데 정부가 묻어두려고만 하는 것은 문제이다. 정부는 남쪽 문제에 대해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남광식=데스크와 기자들 사이의 갈등도 있다. 대북 보도가 표피적으로는 많이 달라졌지만 내부에 담겨진 것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지 않은가. 언론 내부에서도 심각하게 고민하고 토론해야 한다.

김호성=올 한 해 동안 언론의 기조는 대체로 정부를 지원했다고 생각한다. 비판적으로 쓴 기사도 있었지만 큰 틀에서 볼 때 남북정상회담 이후 정부의 정책에 대해 지지하는 편이었다. 언론의 인식도 냉전적 사고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화해협력 방향으로 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이제훈=언론 내부의 문제점 중 하나를 지적하고자 한다. 대북 보도를 하다보면 북한의 의도가 뭐냐를 파악하려는 의도론에 기초한 보도가 주류를 이룬다. 의도를 파악하는데 보도가 치중되다 보니 반화합적인 보도가 많아지고, 북한을 제대로 취재하지 못하니까 기자들이 자체적으로 판단해 잘못 보도하는 경우도 많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자들이 역사와 현실에 대해서 충분히 공부해야 한다. 또한 정부가 북한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알려줘야 한다.

남광식=덧붙여 대북 보도를 할 때 우리 식으로 해석하지 말고 그들의 가치규준대로 판단하고 그런 다음에 우리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먼저 우리 기준대로판단하면 이데올로기가 개입될 수밖에 없고 잘못된 보도를 하게 된다.

정리=박주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