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1면에 전면 편집한 것은 한국 신문사에 기록될 역사적 사건이다. 똑같은 사진과 똑같은 편집보다는 때로는 과감하게 편집의 틀을 깰 필요가 있다.”
“무게가 없고 선정적이다. 아무리 중요한 사건이라도 신문의 틀은 유지해야 하는 것 아닌가? 보도사진은 그래픽이 아니라 보도다. 사진이 크고 작은 것보다 사실적으로 사진을 다루는 게 중요하다. 제목과 기사내용도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중앙일보의 파격적인 전면 사진편집에 대한 논란은 비단 이달의 기자상 심사장에서만 그칠 것 같지는 않다. 제118회 이달의 기자상 심사는 중앙일보의 파격적인 전면 사진편집을 놓고 심사위원들의 자유토론이 장시간 이어졌다. 남북정상의 만남도 처음이지만, 전면 사진편집도 신문사상 처음이라 토론은 뜨겁고 진지했다. 대부분 심사위원들은 새로운 발상과 도전의식의 결과라는데 일치된 견해를 보였다. 보도의 선정성과 보도사진의 그래픽화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지만, 한국 신문사에 새로운 논쟁거리와 연구과제를 던졌다는 점에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신문을 연구하고,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좋은 사례 하나가 추가된 셈이다.
중앙일보의 김정일-장쩌민 극비 베이징 회담 보도 역시, ‘세계적 특종’이라는데 이론이 없었다. 89년 자오쯔양 실각과 97년 덩샤오핑 사망에 이어 중앙일보가 중국에서 건진 ‘또 하나의 대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은 평균 9.0 이상의 높은 평점으로 2차 투표절차 없이 기자상에 곧바로 뽑혔다. 이달의 기자상 심사에서 아주 드문 일이 아닌가 싶다. 중국에 대한 중앙일보의 독점적인 정보력의 비결이 무엇인지? 중앙일보의 중국 특종행진은 벤치 마킹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동아일보가 특종 보도한 ‘동아건설, 총선때 10억대 뿌렸다’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검찰수사가 뒷받침되지 않아 아쉽지만, ‘큰 기사’라는데 이론이 없었다. 정치개혁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 워크아웃 기업의 도덕적 해이가 얼마나 심각한지, 적나라하게 드러내준 보도라는 지적이었다.
지역취재보도 부문에서 수상작으로 선정된 청주방송의 ‘접착제로 아파트 기초공사’는 충격적인 공사현장을 생생하게 고발했다는 점이 높게 평가됐다. 20층 아파트의 철골을 강력접착제로 이어놓은 현장고발 화면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해외 토픽감과 코미디 소재가 눈앞의 현실일 때언론의고발보도는 더욱 위력을 발휘한다. 만약, 문제의 아파트가 완공돼 무너져 내린다면? 상상만 해도 끔직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부실공사 현장은 기자들이 고정 출입처로 삼아야 할 대상이다. 접착제 아파트의 충격은 만장일치 기자상 선정으로 나타났다.
경인일보의 ‘격동 한 세기, 인천이야기’는 기자의 열정과 땀이 스며있는 역작이었다. 연재 100회를 넘는 기획보도물이지만, 참신한 소재 발굴과 차분한 논조가 돋보였다. 지역 언론의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호흡이 길면서 진지한 기획보도의 전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보도사진에서 사실성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시사성과 상징성이다. 사진부문의 동아일보 ‘어린 암환자들을 어떻게 하나?’는 의료계 집단폐업의 어두운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작품이었다. 어린 암환자들의 우울한 표정에 농축돼 있는 의료계 집단폐업의 명암이 잘 포착돼 있었다. 환자들을 팽개치고 거리로 나선 의사들에게 이 한 장의 사진보다 더 강한 양심의 메시지는 없을 것이라는 평가였다.
이 달의 기자상에 선정된 6편의 작품 외에도 아깝게 탈락한 좋은 보도가 많았다. 특히, 문화일보의 ‘팔당상수원 고층아파트’와 중앙일보의 ‘송악산 파괴문제’는 토론과정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탈락해 아쉬움을 남겼다. 둘 다 무분별한 개발에 제동을 거는데 성공해, 진부한 다른 환경보도와 차별성이 돋보였다.
부산방송의 ‘생명의 바다’는 품이 많이 들어가고 바다의 중요성을 일깨웠다는 점이 지적됐다. 한 심사위원의 표현대로 ‘딱 떨어지는 내용’이 없어 빠지고 말았다. 국제신문의 ‘남해안이 죽어 간다’역시 비슷한 평가였다.
시사저널의 ‘광주 5.18 가짜 유공자 추적 폭로’는 용기 있는 기사라는 평을 받았다. 전북 CBS의 ‘보도기획, 이리역 폭파사건’도 자칫 역사 속에 묻힐 뻔한 사건을 끈질기게 추적 보도한 기자정신이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투표에서 아깝게 탈락했다. 무등일보의 ‘순천시 의회 해외 연수비 착복’도 지방의회의 타락상을 고발한 좋은 보도였다.
이번 기자상 심사에서는 YTN의 ‘경찰, 롯데호텔 노조원 폭력진압’보도와 관련, 언론의 자기검열 문제가 중요하게 논의됐다. 첫 보도 때 나간 생생한 현장화면이 나중에 자사의 방송에서는 사라지고 타 방송에 제공돼 기사가치가 크게 떨어졌다는 지적이었다. 폭력진압이심각한문제였다면 화면뿐 아니라, 폭력진압을 본격적으로 문제삼는 보도가 뒤따랐어야 한다는 조언도 있었다. 좋은 화면을 잡은 카메라 기자의 노고가 삭감된 결과여서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