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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 취재수첩이 진가 발휘했죠'

조선 임현찬 차장 ´북 대표단 386세대´보도 기여, 91년 양태현씨와 첫 인연,10년간 자료 보관해와

김상철  2000.11.16 18:3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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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자 조선일보 4면에 눈길 끄는 박스기사가 하나 실렸다.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북측 전금진 단장의 ‘우리도 386이 있다’는 발언으로 주목받은 양태현 내각 사무국 직원에 대한 기사를 발빠르게 보도한 것. ‘북 대표단의 386’ 제하의 이 기사는 양태현 씨의 신상과 발언을 비교적 상세하게 담아냈다. 조선일보의 한 기자와 양씨의 구연(舊緣)이 빛을 발한 결과였다.

임현찬 사진부 차장은 휴가를 마치고 지난달 30일 출근했다. 기사를 챙기고 있던 임 차장에게 오후 회의를 마친 데스크가 지시를 내렸다. 전금진 단장의 ‘386’ 발언으로 화제에 오른 양씨 사진을 한 번 찾아보라는 것이었다. 사진은 없었지만 오후 4시 경 YTN을 지켜보던 임 차장은 화면에 비춰진 양씨를 보게됐다. “낯이 익은데, 어디선가 본 친구 같아….”

그 ‘친구’가 맞았다. 양씨는 지난 91년 10월 평양에서 열린 제4차 남북 고위급 회담의 취재단으로 합류했을 때 자신을 맡았던 안내원이었다. 임 차장은 당시 5년차 기자로 취재단은 물론 남측 대표단 가운데서도 막내 격이었다. 평소에도 매일매일 만난 사람들을 기록할 정도로 정리에 열심이던 임 차장은 곧바로 사물함을 뒤져 10년 전 취재수첩을 찾아냈다.

‘양태영. 61년생. 백두산 부근 양강도 출신. 평양외대 영어과 졸업. 조선청년학생위원회 연구원. 조선중앙통신 근무….’ 이름 한 글자는 달랐지만 수첩에는 당시 양씨가 동행하면서 이인모 노인 북송, 미군 철수와 핵 문제, 북측의 권력세습 등 민감한 부분들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던 내용들이 고스란히 적혀있었다.

임 차장은 홍준호 정치부장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반신반의하던 홍 부장은 임 차장의 취재수첩 내용을 확인하자 ‘사진 있느냐’고 물었다. 사진은 집에 있었다. 오후 4시 30분 경 부랴부랴 홍제동 집으로 달려간 임 차장은 다시 사물함을 뒤졌고 인민문화궁전 앞에서, 지하철과 버스에서 함께 찍은 사진 3장을 찾을 수 있었다. 사진을 보는 순간, ‘역시 그 친구’였다. 결국 기사는 42판부터 실렸고 임 차장이 91년 취재수첩에 적어놓은 기록들은 유용한 기사재료로 사용됐다.

임 차장은 “10년 전 취재수첩을 보관하고 있다는 데 주위에서 많이 놀라더라”면서 “기념사진이 보도사진이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아울러 “기회가 닿아서 3차 회담 때 한번 만나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도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