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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협회 똑바로 하시오´ 생일날 던지는 고언

김일환 광주일보 편집부 기자,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부 기자, 한수진 SBS 국제부 기자,박상용 청주CBS 보도국 기자, 권영준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차장

김일환 등  2000.11.17 20:5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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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협회가 36년간 거둔 성과는 모두 회원들의 마음과 힘을 모은 결과였다. 그러나 결과가 항상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고, 질타의 목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기협은 질타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늘 회원들과 또 언론을 생각하는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36돌 생일을 맞아 앞으로 더 나은 36년, 360년이 되기를 다짐하는 오늘, 다시 회원 및 시민들의 꾸짖음과 따끔한 충고를 수렴해 가슴에 새긴다. 그리하여 이 질타와 조언을 앞날의 나침반으로 삼을 것을 다짐한다.





김일환 광주일보 편집부 기자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지방기자는 슬프다.

IMF를 겪으면서 동료기자들이 무수히 잘려 나갈 때, 회사가 부도를 내고 문을 닫아 떠나갈 때 망연자실, 속수무책 그저 슬프기만 했다. 또, 쥐꼬리만한 월급에 그래도 밖에서는 기관장 대접을 받는다며 쓴웃음을 짓는 그 얼굴이 슬프다.

월급날이면 윗돌 뽑아 아랫돌 막느라 정신없이 현금서비스를 받는 그 모습이 슬프다. 이제는 언론개혁이라고 떠들 때 공허한 메아리로 치부하는 우리의 나약함이 슬프다. 신문사가 너무 많다고 손가락질 할 때 우리 회사는 아니라고 도리질치는 현실의 비정함이 슬프다.

그리고 셀 수 없는 더 많은 슬픈 사연들….

이제는 이 슬픔을 거두게 해야 한다. 기자를 시작할 때의 초심으로 되돌아가게 해야 한다. 적어도 그 절반의 몫은 우리들의 구심점인 기자협회에 있다고 생각한다. 기자협회보, 기자통신이나 가끔 받아 보고 잊혀질 만하면 열리는 세미나. 구심점으로서 기자협회를 느끼게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제는 지방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언론개혁을 하겠다면 지방의 구조적 부조리를 외면하지 말라. 지방기자들이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는 터전 개선에 앞장서야 한다.

협회 운영도 형식적인 지방 배분보다는 보다 과감하게 지방의 목소리를 수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지방의 쓴소리를 단소리로 듣는 기자협회가 되길 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부 기자

기자협회는 영화로 치자면 배경 음악 같은 존재였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있기에 영화음악이 탄생했지만 영화음악은 영화와 별도로 분리될 수 있다. 기자협회도 그런 존재라는 느낌이 든다. 기협은 기자들을 공기처럼 감싸는 하나의 환경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만든’ 환경이 아니라 ‘받은’ 환경이었는지, 맑은지 탁한지 그 수질을논하는기자들은 별로 없다. 무관심이다. 좋게 말하면 기협이 어디에 물들지 않고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왔기 때문이고 달리 말하면 우리가 아닌 남이라는 느낌을 기자들에게 줘왔기 때문이다.

국민이 대표를 뽑아 정부를 구성했다는 형식에도 불구하고 국민과 정부 사이의 간극이 이만저만이 아니듯 기자들과 기협의 거리도 만만치 않다고 본다. 어느새 손을 들어 문제를 제기할 수도 없는 도그마로 변한 기자협회를 바라보는 심정은 착잡하다.

왜 기자들의 협회인 기협에서 남의 향기가 나는 것일까. 기협이 한국 사회와 언론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다양성이 아닌 획일성, 개별성이 아닌 집단성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침대 길이에 맞춰 다리를 자르거나 늘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결점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타인을 대하기란 참으로 거북하다.

다양성과 개별성을 중요시하고 대면 접촉이 줄어드는 사회의 특성을 반영해 기협이 새롭게 할 일은 얼마든지 있다고 본다. 남이 아닌 나의 기협을 만나도록 서로 노력해 보자.







한수진 SBS 국제부 기자

기자협회가 서른여섯 살 생일을 맞았습니다. 10년 전 건장한 스물여섯 살 청년의 모습을 본 게 협회에 대한 첫 인상일만큼 기자 경력이 일천한 제가 무어라 말씀드릴 입장은 아니지만 ‘반가운 생일’임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협회의 36년은 민주언론 발전과 회원들의 권익 수호라는 태생의 목표를 충실히 수행해 온 기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사마다 뒤늦게 노조가 생기면서 협회의 역할과 위상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고, 때때로 소소한 갈등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여전히 협회의 존재가 절실하다는 데 공감하지 않는 기자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물론 생일상이 온통 축하와 격려만으로 넘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걸핏하면 자기 자식들 야단이나 치지 도대체 도와주는 게 뭐가 있냐”는 냉담한 반응이나,“그 정도면 됐지 뭐 더 할 일이 있겠느냐”는 시니컬한 폄하도 분명 들려옵니다.

흔히 지금을 언론의 격변기라고 합니다. 언론의 위상과 기자의 역할에 대해 새로운 모색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 한가운데에는 물론 기자협회가 당당히 서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기자들의 마음과 뜻을 모으는 데 더 정성을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언론노조와의생산적 협력 관계를 찾고, 나아가 언론인의 집합체로서 새로운 역할을 자임해 나가는 데 있어서 회원들을 향해 큰 귀와 긴 팔을 열어 놓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생각됩니다.

곧 다가올 불혹(不惑)을 넘어 백 년, 천 년 이어질 튼튼한 뿌리를 가다듬는 생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축하합니다.







박상용 청주CBS 보도국 기자

요즘 우리는 의사협회라는 거대 조직이 회원들의 이익 창출을 위해 펼치는 치밀한 전략 전술과 대응논리를 지켜보면서 조직의 힘에 탄복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속해 있는 기자협회는 이런 상황에 닥쳤을 때 과연 회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의사협회처럼 과감한 승부수를 띄우고 이에 따른 모든 도덕적 비난과 법적 책임을 십자가로 짊어지고 갈 수 있을 것인가?

아무리 곰곰이 반추해 봐도 왠지 어렵다는, 아니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같은 생각은 지난 IMF 경제위기 당시 기자협회에 속해 있던 수많은 기자들, 특히 이른바 Local 기자라고 하는 지방신문과 지방방송 기자들이 정리해고를 당해 신음할 때 기자협회가 한 일을 생각하면 결코 기우가 아닐 것이다. 그때 기자협회는 무엇을 했는가. 정리해고를 당한 회원 기자들이 하루하루 끼니 걱정을 하는 동안, 기자협회 간부들은 중국, 베트남이다 해서 외유를 떠나지 않았는가.

이제 기자협회는 분명히 개혁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회사의 경영 논리에 희생돼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며 광고를 구걸하는 기자들, 이런 면에 능력이 없다며 해고당하는 기자들, 전문기술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기자들, 이들을 위해 기자협회는 지금부터라도 회원들의 어학 교육비를 지원한다거나 하다못해 퇴직 위로금을 지급하는 등 회원들이 꼬박꼬박 납부한 회비를 회원들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회원기자들이 회사에서, 출입처에서 휘둘림을 당할 때 그들을 대신해 한껏 목청을 높일 수 있는 그런 기자협회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권영준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차장

언론운동사를 들춰보면, 과거 군사독재정권의 언론통제에 맞서 언론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운동의 중심에 기자협회가 있었다. 74년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 동아투위와 조선투위, 80년 신군부의 언론검열거부운동 등등.

기자협회 창립일을 맞아 협회와 구성원들이 기자운동의 역사를 되돌아봤으면 한다. 대선배들이 엄청난 불이익과 고통을감내하며군사독재정권으로부터 지키고자 했던 언론자유. 그 언론자유는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 언론자유는 변질되어 군사독재정권에 굴종하거나 유착하며 성장한 언론사주나 언론기업의 전유물이 되어 버렸고, 기자들의 언론자본에 대한 예속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기형적 소유지배구조 아래 족벌사주의 편집권과 경영권의 전횡이 이루어지고, 기자들은 경제위기 이후 고용불안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내몰리고 있다.

이런 구조적 문제들은 병폐들을 키워왔고, 지난 99년에는 중앙일보 사장의 탈세비리 사건, 언론대책문건 사건, 그리고 크고 작은 기자 비리사건이 터져나왔다. 또 최근에는 기자들의 잘못된 특권의식에서 기인한 행태들이 비판의 도마에 자주 오르내린다. 그런 가운데 국민들의 언론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졌고, 개혁에 대한 요구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오늘날 언론개혁은, 기자들에게는 언론자본으로부터 진정한 언론자유를 지켜내는 일일 것이다. 언론개혁을 위해서는 시민사회로부터의 요구도 중요하지만, 내부개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자협회가 언론개혁의 한 주체로서 제 2의 기자운동의 역사를 새롭게 만들어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