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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시리즈]-위기의 언론,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2.흔들리는 기자사회

"토론도 논쟁도 없다" 자사 이기주의·무관심 팽배

김상철 기자  2001.07.14 10: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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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 이해·생존논리 앞에 ‘휘청’



기자 직업의식·업무수행 평가 ‘하락세’





“일전에 타사기자들 모임에 갔었다. 현안인 세무조사에 대해 ‘너희 회사는 어떠냐, 네 생각은 어떠냐’ 물어볼 분위기가 아니었다. 당연한 관심사였지만 서로 말을 피했고, 염탐하는 것 같아 묻지도 않았다.”

“처음 신문사에 들어왔을 때 편집국은 항상 시끄러웠다. 데시벨이 50은 됐을까. 지금은 토론도 논쟁도 없다. 딱 잠자기 좋을 만큼 조용하다.”

연대와 공유의 여지도 줄어들고, 관심과 논쟁도 사라져간다. 한 언론계 인사는 “회사의 그늘 속에서 기자들은 좀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세무조사로 촉발된 언론탄압과 언론개혁 공방을 둘러싸고 ‘기자들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우려를 더욱 깊게 하는 점은 거듭되는 ‘탄압 공방’ 속에서 기자사회의 양분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신문사 차장은 “요즘처럼 기자들간의 인식 차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적은 없었다. 이젠 양분화를 넘어 파당화로 치닫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회사`‘그늘’`속에서`안주만

실제로 “비겁한 기자들”이라는 자기비판의 다른 한편엔 “피차 확신범들 아니냐”는 반응도 제기된다. 한 언론사 기자는 “누가 ‘사주를 위해 이 기사를 써야겠다’라고 생각하겠는가. 언론탄압이라는 인식에 동감하기 때문에 이것이 지면에 반영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개혁이라고 주장하는 쪽도 마찬가지이고 그런 면에서 다들 확신범”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양상을 한 취재기자는 “기자들끼리 토론의 자리도, 여지도 없다. 출입처에서도 몇몇 사별로 기자들은 따로 논다. 누구도 상호간의 깊은 ‘균열’을 봉합하려 들지 않는다”고 전했다.

물론 기자의 정체성, 기자사회의 위기가 거론된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많은 기자들은 그 연원을 자사 이기주의에서 찾는다.

한 기자는 “90년대 치열한 경쟁체제로 넘어오면서 언론계의 중심적인 인식에 자사 이기주의가 자리잡았다. 언론사도 노조도 본연의 업무는 수행했겠지만 큰 맥락에서 보면 기본 가치는 자사 중심에 있었음을 부정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회사 이해가 우선되다 보니 지금의 상황 역시 정부 관계 속에서의 회사 입지나 경영상황 등에 따라 기자들이 재편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 신문사 기자는 “언론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사주와 긴장관계 형성이기자들의 주요 책무 가운데 하나라고 볼 때 기자들은 내부의 비판과 견제기능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다”면서 “이는 자사 이기주의와 연결돼 사안에 따라 사주나 회사 입장을 자기 입장과 동일시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반면 소유구조를 달리하는 언론사의 경우 생존논리가 기자들의 발목을 잡는다. 한 기자는 “경영 정상화는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 누가 강제해서가 아니라, ‘회사 살리기’라는 문제는 그만큼 절박하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기자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자’는 말은 공허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기자에게`두려운`것은`독자`뿐

“자사 이기주의, 그 너머의 문제는 무관심이다. 기자사회가 어떤 상황인지, 왜 이런지 기자 스스로도 잘 모르는 것 같다.” 한 기자는 문제의 심각성을 이렇게 전했다. 또 다른 문제는 이같은 양상이 계속될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기자들에게 돌아오게 된다는 점이다. 조짐은 독자와 시청자로부터 먼저 온다.

언론재단에서 2년마다 한번씩 실시하는 수용자 의식조사를 살펴보면, 언론매체에 대한 만족도나 신뢰도는 답보상태에 있는 반면 기자에 대한 평가는 ‘추락’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96~2000년 언론에 대한 만족도는 5점 척도 기준으로 평균 3.08점→2.91점을 기록했다. 신뢰도의 경우 98~2000년 신문은 3.21점에서 3.07점으로 하락했으며, TV뉴스는 3.29점에서 3.41점으로 높아졌다.

이에 반해 96~2000년 기자에 대한 평가는 4점 척도 기준으로 ‘높은 직업의식을 갖고 있다’ 2.62점→2.45점, ‘다른 사람의 인격과 권리를 존중한다’ 2.33점→2.26점, ‘사실을 꼭 확인하고 기사를 쓴다’ 2.24점→2.16점으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

지난 97년 한 기자는 노조위원장을 연임하며 “기자에게 두려운 건 사주도, 자본도 아닌 독자 뿐”이라는 말로 취임사를 대신했었다. 한 기자는 “지금이야말로 기자 본연의 자세에 대한 근본적이고 비판적인 고민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기자사회의 복원, 더 이상 ‘이상’으로만 남겨둘 수 없는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