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하 노사모)’이 ‘조선일보 50만부 절독운동’을 선언한 것이 계기가 됐다. 한나라당이 발끈했다. 14일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회의에서 심규철 의원은 노사모의 조선일보 절독 선언에 대해 “또 다른 형태로 언론자유를 탄압하겠다는 조폭식 언론개혁”이라고 비난했다. 지난 99년 말 조선일보의 논조에 문제의식을 품은 네티즌들이 인터넷 동아리로 모이면서 시작된 안티 조선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이 연대해 특정 신문을 상대로 구독거부 운동을 지속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정치 쟁점화는 더더욱 이례적이다.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 안티조선의 흐름을 돌아봤다.
최장집 교수 사상검증을 계기로 조선일보의 보도태도와 논조에 문제의식을 느낀 네티즌과 시민단체 사이에서 개별적으로 진행되던 안티조선이 집단적 움직임으로 가시화된 시기는 지난 2000년 8월. 학계와 종교계, 문인, 시민단체 등 각계인사 154명이 ‘1차 조선일보 거부 지식인 선언’을 한 때부터다.
당시 선언 참가자들은 “개혁적인 또는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더 이상 ‘조선일보의 상술’에 기여하지 않겠다는 다짐”에서 조선일보 기고와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런 최초의 공개적이고 집단적인 조선일보 거부 선언은 상당한 파장을 몰고 왔다.
한편에선 전국의 6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조선일보 반대 시민연대’라는 연대 조직의 결성을 불렀다. 다른 한편에선 조선일보 바로보기(이하 조선바보) 옥천시민모임 등 지역의 안티조선 조직 결성을 촉진하는 역할을 했다. 안티조선의 지역 조직은 같은해 11월 안티조선일보 경남시민연대, 12월 조선일보를 거부하는 광주전남시민모임의 결성으로 이어졌다. 앞서 조선바보 옥천시민모임은 이후 전국 30개 지역에 조선바보 모임을 만드는 모체가 됐다.
각계각층 인사의 잇단 거부 선언과 조직 결성에 힘입어 안티조선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 본격적인 시민운동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안티조선이 TV토론회 주제로 설정돼 각 가정의 안방까지 전파된 것은 물론, 여론 환기를 위한 각종 집회와 행사, 시위 등이 이어졌다.
지난해 안티조선 시민운동화 성과
2000년 10월 부산 시민인 김동호씨가 47일동안 ‘안티조선 국토순례‘를 가졌고 이듬해 3월엔 한의사 한일수씨가 조선일보 반대 국토종단 행진을 벌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같은 달 26일부터 서울에선 ‘조선일보 반대 1인 릴레이 시위’가 이어졌으며 시민강좌, 대학생 논술대회, 토론회 등 다양한 방식의 대 국민 활동이 이뤄졌다. 6월말엔 민주노총이 소속 연맹 및 단위노조 차원의 집단 절독 운동을 선언했으며 9월엔 역대 최대 인원인 739명이 참여한 조선일보 거부 4차 지식인 선언이 이어졌다.
이치럼 지난 한해 동안 안티조선이 대중운동화할 수 있었던 것은 언론사 세무조사 정국과 맞물리면서 언론개혁을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의 활동과 상승작용을 일으킨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올해 들어선 ‘조선일보 반민족·반통일 행위에 대한 민간법정’으로 다시금 주목을 끌었다. 국내 최초의 민간법정이라는 사실뿐 아니라 특정 언론의 보도태도를 민간차원에서 심판한 것 역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일이어서 그렇다.
하지만 이런 안티조선에 대한 비판도 없지 않다. “특정 언론을 지목해 구독 중단을 선언하고 이를 여론화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조선일보반대 시민연대 최민희 대변인은 이에 대해 “안티조선을 반대하는 견해를 밝힐 수 있다. 마찬가지로 신문을 보지 않는 이유를 밝힐 권리도 있다. 선택은 독자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정치 쟁점화는 노사모 영향력
시민운동으로 전개돼 온 안티조선이 노사모의 참여를 계기로 정치쟁점화한 것은 노사모 자체의 성격과 그 영향력이 첫 번째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노사모가 민주당 노무현 대선 후보 지지를 공개천명하고 활동해 온 온라인 모임이고 민주당 경선과정에서 이른바 ‘노풍’을 부른 장본인으로 지목되면서 한나라당을 긴장시켰던 게 사실이다. 노사모는 이미 한나라당의 경계 대상이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노사모의 조선일보 절독운동을 “또 다른 형태의 조폭식 언론개혁”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노사모의 영향력을 사실상 인정하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 또한 노사모의 움직임을 지난해 언론사 세무조사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고 있음도 보여주는 것이다. 안티조선에 대한 반응을 아끼던 조선일보도 지난 15일 ‘명계남식 조폭적 언론관’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노사모의 절독운동을 집중 비판했다.
하지만 노사모의 조선일보 절독 선언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면서 비난하는 것은과도하다는 지적도 있다. 광운대 신문방송학과 주동황 교수는 “노사모가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고 있지만 조직적 체계를 갖춘 정치집단으로 보기 어렵고 또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는 것은 시민단체에서도 가능한 것 아니냐”며 “노사모의 안티조선을 정치세력화로 단정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주 교수는 이어 “안티조선은 시민단체와 조선일보의 문제이지 야당이 개입할 사안이 아니다. 정부여당을 비판하는 논조의 신문을 반대한다고 곧바로 정부 여당 편이란 규정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조선일보반대 시민연대 최민희 대변인은 “노사모와는 사안별 계기별 연대는 가능할 지 모르나 조직적 관계는 고려하지 않고 있고, 해서도 안된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