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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호 기자의 죽음에 부쳐

제 살을 깎다 가버린 친구에게

한정일  2000.11.19 17: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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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일 조선일보 편집부 기자





몇몇 단체가 모여 ‘조선일보에 대한 취재와 인터뷰를 거부한다’고 선언한 날, 입사동기인 준호를 땅에 묻었다.

관은 의외로 무거웠다.

예정된 죽음이었지만 북망(北邙)의 산에 가볍게 오르기에 마흔 한살의 준호는 너무 젊었던 것이다. 7개월 넘게 암투병을 하며 그의 몸에서는 체지방이 남김없이 빠져나갔지만 관속에 누운 준호는 앙상한 뼈마디와 생에 대한 마지막 미련을 모아 완강한 중력으로 버티며 우리를 괴롭혔다. 나무뿌리에 걸리거나 혹은 무게중심을 잘못잡아 비틀거리면서 운구를 맡은 장정 여덟은 가까스로 그를 무덤가에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낯선 천주교의 의식에 따라 망자를 위한 기도와 노래가 반복되는 동안 준호는 황토색 흙더미 아래로 사라졌고 부인은 웃고 있는 죽은 남편의 영정을 끌어안고 울부짖었다. 엄마 손을 양쪽에서 꼭 잡고 따라다니던 초등학생 두 딸아이가 울음을 터뜨렸을 때, 우리들은 자리를 피해 나무그늘에서 담배를 피거나 구두뒷축으로 애꿎은 잔디를 짓이겼다.

그렇게 준호는 갔다.

마흔 한살에 하루하루 체중이 줄어드는, 비현실적인 친구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더구나 사회부와 경제부의 채 40이 안된 후배기자 둘을 몇개월 사이에 암으로 연달아 떠나보낸 우리들은 믿기지 않는 현실의 잔인함 때문에 모두 지쳐있었다. 광화문 회사근처 식당골목의 음식들이 먹고싶다고 해서 가져다 주기도 했지만 준호의 몸은 제살만 깎아먹을 뿐 아무것도 삼키지 못했다. 의사가 예견한 것보다 끈질기게 버티며 우리에게 ‘기적’을 소망하게 한 그였지만 준호의 의지는 생을 몇개월 더 연장시킨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있으랴만은 준호는 항상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 미소처럼 잔잔한 향기를 머금은 사람이었다. 자신이 죽어가면서도 투병하고 있는 후배들을 걱정하던 그 터무니없는 사람됨은 비보를 듣고 날아온 일본기자마저 울게 만들었다.

이준호. 그리고 먼저간 후배 이창원, 모태준.

그들이 언론이 아닌 다른 직업을 택했던들, 누릴 수 있는 생이 이렇듯 짧지는 않았으리라는 우울한 가정이 한동안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치열하게 살지 않았던들, 술에 취한 채 집에 들어가 잠들어버린 어린 아이들의 얼굴만 겨우 만져볼 수 있었던 어리석은 가장이 아니었던들,지면을들여다보며 밤새 고민해야 하는 비인간적인 직업을 택하지 않았던들, 그들에게 허락될 이승의 즐거움은 훨씬 더 크고 길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떠나갔지만 남아있는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가을이 깊어지면 나무들은 밤새 제 잎을 털어 낼 것이고 스석거리는 갈대숲 사이에 새들은 알을 낳을 것이다. 깊은 겨울잠에 빠지는 생명들은 봄이 되면 미친 듯 깨어나 짝짓기에 열중할 것이다. 땅에 묻힌 육신이 삭아가는 동안 우리는 조금씩 그들을 잊어갈 것이고 술취해 소리치고 욕망을 찾아 킬킬거릴 것이다. 떠나간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밤새 만들어낸 신문에 대해 쏟아지는 이런저런 세상의 소리를 들으며 고민할 것이고 그런 갈등과 주장들이 더 바람직한 삶의 터를 만들려는 우리 ‘쟁이’들의 바람과 다르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그리고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사라질 몇줄의 제목과 기사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며 ‘제 수명’들을 깎아먹는 어리석은 짓들을 계속할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살 것이다?

잘가라 준호야, 이제 편히 쉬어라. 먼저 간 후배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