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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기·자·실·은] 서울지검 기자실

사라진 폭탄주, 검사들과 술대결은 옛말, 큰 사건 터질때마다 지원조 나타나 ´만원´

신성범  2000.11.19 18: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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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범 KBS 법조팀 기자





9월 29일 오전 10시 30분. 오늘도 기자실에 ‘장’이 섰다. 공식 브리핑 시간이다.

“어제의 조사내용은…오늘의 주요 예정사항은….”

이렇게 진행되는 차장검사의 브리핑은 신용보증기금 대출보증 외압의혹사건. 검찰 기자들이 ‘신보사건’으로 약칭하는 사건의 수사내용을 그나마 들여다 볼 수 있는 유일한 공식 창구이다.

검찰에서는 수사내용을 충실히 설명한다고 하지만 기자들에겐 항상 ‘코끼리 비스킷’이다. 질문을 통해 무언가 건지려 하지만 20년 경력의 차장검사도 녹녹치 않다.

“김 기자께서 말씀하신 그 부분을 저희도 조사중입니다…수사가 진행중이라 그 부분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기사 야마는 안 서고, 확인은 안 되고…. 우루루 부장검사 방으로 올라가 보지만 ‘차장님이 말씀하셨는데 뭘…’ 하며 면회 사절이다. 검사나 수사관이라도 만나야 하지만 특수부와 공안부 검사실은 사전 약속을 하고 허락을 받아야 출입할 수 있도록 보안장치가 된지 오래다.

속칭 ‘벽치기’도 불가능하고 몇 번 당한 뒤로는 검찰의 문서보안도 강화돼 ‘쓰레기통 뒤지기’로 특종을 건지는 행운은 이제 선배들의 전공담일 뿐이다. 그래도 매일 다르게 나오는 기사들. 검사들은 혀를 내두른다.

‘어디서 알았어? 정말 기자들은 알아줘야 해’

이렇듯 서울지검 기자실은 요즘 전장(戰場)이다. 상주 기자만 40명인데 큰 사건만 터지면 나타나는 ‘지원조’에 카메라 기자, 사진 기자까지 포함하면 그야말로 포화상태이다. 저녁엔 짜장면에 군만두를 든 철가방들이 출현하고 밤이면 7평 남짓한 안방과 소파는 오늘 밤 ‘뻗치기’ 담당인 말진들의 차지이다.

서울지검은 대법원, 대검찰청, 서울지검, 서울고법과 지법, 헌법재판소를 출입처로 하는 법조기자들의 최전선이다. 주로 각 사 법조팀의 2진들이 한두 명의 후배들과 함께 취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후배 없는 1진, 일명 ‘독진’들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느라 손이 아프고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하는 고달픈 출입처이기도 하다.

게다가 우리 언론 특성상 검찰기사는 지면에 팍팍 먹히는데다 제목도 시커멓게 달고 나타나기 일쑤여서 그 스트레스란 제3자한테는 설명이 곤란한 정도이다.

스트레스 얘기가 나왔으니 검찰과 술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검찰에서 폭탄주는 사라졌다. 검찰간부와 몇잔을돌렸느니, 검사들과 기자들이 술시합을 했는데 몇 라운드에서 KO시켰다느니 하는 얘기는 적어도 진모 검사장 설화 이전의 ‘일화’일 뿐이다. 요즘은 간혹 검찰측과 식사를 하더라도 기자들은 맥주 한잔, 검사들은 사이다 아니면 포도쥬스(오해말라, 포도주가 아니라 진짜 쥬스다)를 홀짝거릴 정도이다.

기자나 검사 모두 이런 변화에 익숙해졌다. 양측 다 바빠졌고 두 집단 모두 은연중 갖고 있던 선민의식, 과장된 자의식, 부기가 빠졌다고나 할까.

피의자와 씨름하는 검사, ‘부장책임제’ 때문에 기록검토 시간 뺐길까봐 기자가 와도 차를 대접하지 않는다는 부장검사….

예전같은 ‘호방함’과 ‘얘기’는 없어졌는지 몰라도 시대가 과거와 같은 검찰상의 폐기를 요구한 이상 검찰의 변화는 분명 긍정적이다.

검찰 못지 않게 기자들도 변하고 있다. 검찰수사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와 뻥튀기식 기사보다는 생활과 밀착한 법조기사를 발굴하는 것이 누구나 가슴에 안고 있는 소망이다.

또 위치상 정확한 보도의 중요성을 가장 실감하고 있다. 검찰이 기소내용을 그대로 기사화한 것이 소송의 대상이 되는 현실에서 우리끼리는 ‘오늘도 몇 억원을 벌었다’고 자조하곤 한다.

서울지검 기자실 역시 매일 ‘물을 먹고 먹이는’ 관계의 연속이지만 ‘물먹은 자’의 내상 정도는 다른 기자실보다 중상에 해당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나 기자들끼리의 유대감과 인간적인 끈끈함은 이미 정평이 나 있는 상태이다. 지난번 모 신문의 동료가 투병생활 끝에 운명을 달리 했을 때 타사의 OB들까지 상가로 달려와 눈가를 몰래 훔치며 요절을 안타까워 했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