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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보도 올해도 겉돈다

피감기관 '재탕.과장 여전' 불만, 언론 '주요 자료 접근 기회'반발

김 현  2000.11.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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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국정감사를 앞두고 언론의 ‘지상 국감’이 한달여 계속되고 있다. “○○부가 ○○○의원에게 제출한 국감자료에 따르면”이라는 국회발 기사가 대량으로 쏟아지면서 ‘재탕’ ‘과장’이라는 연례행사적인 비난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재탕 보도의 대표적 사례는 올해 국감 자료가 처음으로 지면에 등장한 9월 6일자 ‘e-메일 불법감청’ 조선일보 기사. 이 자료는 이미 지난 5월 10일 감사원이 발표한 ‘통신제한조치 운용실태 감사결과’에 들어있었음에도 조선일보는 이를 기사화하면서 “감사원은 지난 5월 특검 결과를 언론에 발표하면서 e-메일 감청사실을 보도자료에서 제외시켜 사실을 축소하려했다”고 말했다.

당시 브리핑을 담당했던 김영호 감사관은 “e-메일 감청이 주요한 사안이 아니라서 보도자료에는 빠졌지만 이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이 있었고 자체 취재를 한 기자도 있다”고 반박했으며, 실제 경향, 대한매일, 문화, 중앙 등은 감사원 발표 당시 e-메일 감청 문제를 기사화한 바 있다.

당시 e-메일 감청기사를 썼던 한 기자는 “브리핑 때 질문 내용을 조금만 유심히 들었더라도 기사를 쓸 수 있었을 것”이라며 “9월 6일자 기사를 보면서 5월의 기사와 다른 점을 찾아보았지만 발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과대 포장도 여전하다. 한국통신은 지난달 19일 언론에 일제히 보도된 ‘한국통신 1조 4000억원 예산낭비’기사를 두고 ‘악의적인 폭로성 기사’라며 펄쩍뛰고 있다.

김동춘 기획예산팀장은 “94년부터 신규사업에 투입된 예산의 총금액이 1조 4000억원”이라며 “그중 CT폰 사업 등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밝혀진 사업은 인정하지만 무궁화 위성사업이나 초고속국가망 사업 등의 역점 사업에 들어간 돈도 예산낭비냐”고 되물었다.

김 팀장은 또 “16개 해외사업 중 파산했다고 보도한 6개 사업은 나중에 매각을 해서 오히려 116억원의 이익을 보았다”고 말했다.

이를 보도한 한 기자도 “이번 보도만큼은 오해의 소지가 있었던 것 같다”고 인정했다. 한 국회 관계자도 “기자들이 오보를 쉽게 인정하지는 않지만 이번엔 조금 무분별하게 썼다는 얘기들을 주고받는다”고 전했다.

이같은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국정감사는 평상시 접근이 어려운 자료가 쏟아져 나오는 ‘기사 성수기’로 인식되고 있다. 호남 출신 위주로 물갈이된 사직동팀의 인적구성을 보도한 지난 2일 기사와‘사이버아파트 과장광고’ ‘한국통신 임직원 3600억원 부당이득’ 등의 기사는 국정감사가 아니면 접근하기 어려운 문제로 꼽힌다.

한 기자는 “국감 기사와 관련 경쟁 때문에 무리한 보도를 하는 것은 문제지만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킨다는 긍정적 의미를 상쇄시키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의원실에서 국감 준비의 실무를 맡고 있는 보좌진들의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한 보좌관은 “기자들 전화가 수없이 걸려오는데 대부분 어떤 특정한 걸 물어보는 게 아니라 ‘뭐 쇼킹한 거 없냐’는 식이어서 오히려 내가 취재기자가 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반면 의원들의 ‘한 건’ 경쟁에 대한 지적도 적지 않다. 한 정보통신위 소속 의원 보좌관은 “한국통신 1조 4000억 기사가 한 번 나갔는데 이제 몇백억짜리로 기사가 먹히겠느냐”며 “옆 의원실에서 특종 기사가 나가면 분위기가 썰렁해진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또 어느 비서는 준비하고 있던 보도자료를 들고 와 “이 정도면 내일 1면 톱감으로 될 것 같냐”고 물어오는 희극까지도 벌어졌다.

이같은 경쟁은 긍정적인 면도 있다. 지난달 5일 38개 시민단체가 모여 발족한 국감시민연대의 양세진 공동사무국장은 “과열도 문제이기는 하지만 의원들의 보도자료 만들기 경쟁은 활발한 국정감사를 위해 장려해야할 일”이라며 “언론이 이를 잘 이끄는 역할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국민의 알권리와 쏟아지는 국감 자료 속에서 ‘언론이 냉정해져야 한다’라는 지적은 올해 국감에도 여전히 유효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