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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하현달을 보며

박 찬  2000.11.19 19: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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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찬 대한매일 특집기획 팀장





서울에 산지도 35년이 넘어가는데 지금까지 남산 팔각정에 올라가 본 것이 서울에 오던 해 딱 한 번뿐이다. 7년 전 일산으로 이사온 뒤 그 유명한 호수공원에 가본 일도 아직까지 없다. 일요일마다 서울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몰려오는데 평일 출근길은 물론 일요일 출근할 때마다 매번 그 옆을 지나가면서 그냥 이곳이 뭐가 그리 좋다고 저렇게들 몰려올까 하는 생각만 했을 뿐 아직도 한 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아마 무심함 때문이리라. 가까이 있는 것들에 대한 무심함.

그런 무심함은 비단 장소에 대해서만은 아닌 것 같다. 책장에 책이 잔뜩 꽂혀 있지만 이사올 때 책 정리를 하며 새로 꽂을 때를 제외하곤 한번도 꺼내 본 적이 없는 책도 있다. 어디 책뿐인가. 아직 한번도 눈길이 안간 곳도 있다. 예를 들어 잡동사니가 잔뜩 쌓여있는 방구석이라든지, 헌 짐을 쌓아놓은 베란다 구석 등….

그러고 보면 나는 가장 가까이 있는 장소나 물건, 혹은 사람들에게까지 그 무심함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가끔 아내로부터 ‘사람이 왜 그리 무심하냐’는 핀잔을 듣는 일이 많다. 그럴 때마다 정말 내가 무심한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스스로는 나처럼 여기저기 세심하게 관심 갖는 사람도 드물 거라 생각하지만 주위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보다.

그런데 한편 생각해 보면 정말 내가 무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본지도 꽤 오래인 것 같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선생님으로부터 ‘오일삼성(吾日三省)’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원래 이 말은 공자의 제자 증자가 한 말로 남을 위해 일을 도모함에 충실했던가(爲人謀而不忠乎), 벗과 더불어 사귐에 성실했던가(與朋友交而不信乎), 전수받은 것을 복습했던가(傳不習乎) 등 세 가지로 날마다 자기 자신을 반성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말이다.

그런데 어떤 선생님은 특히 생각없이, 또는 자신에 대한 반성없이 시절을 보내는 학생을 경책하기 위해 일일삼성(一日三省)이라며 하루에 세 번씩 스스로를 반성하라는 뜻으로 풀이해주기도 했다.

풀이야 어찌 됐건 모두가 스스로를 반성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데, 그 때는 물론 그 이후 한창 젊은 시절에도 그 말은 별로 가슴에 와 닿지가 않았다. 아마 바삐 돌아가는 숨가쁜 시절, 한가롭게 언제 그런 생각을하느냐는오만도 없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생각하면 일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소홀한 것이 바로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 아닌가 싶다.

가을이다. 한 해가 또 저물어가는 계절이다. 계절에 뜨는 달(月) 중에 가장 외롭고 쓸쓸하게 보이는 달이 음력 구시월에 뜨는 하현달이다. 모양이 어찌 달라지는 지도 모르게 변해가는…. 잠이 오지 않는 밤, 아파트 베란다로 나가, 아니면 집근처 공터로 나가 밤늦게 떠오르는 하현달을 보며 새삼스럽지만 자신을 한 번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