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로서 제일 중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내가 알기에는 첫째는 부지런함이고 둘째는 끊임없는 자기 고민이다. 부지런함에 대해서야 달리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그러나 부지런함을 넘어서는 덕목은 역시 자기 고민, 끊임없는 자기 성찰이다. 언론의 기능이 바로 사회의 고민을 대행하는 것이 아닌가. 또한 자기 고민 없는 부지런함이 때로는 게으름보다 더 큰 해악을 끼친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물론 손관수 기자도 부지런한 기자다. 도무지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 있는 성미가 못되는 위인이다. 독도에 일본인들이 버젓이 호적을 옮겨 놓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도 그런 성미 탓이었다. 물론 상복과는 인연이 멀어 소문난 언론 상을 받은 적은 없지만 그것이 무슨 큰 상관인가. 언론계 동료, 선후배가 인정하는 것 이상의 상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손관수라는 사람이 기자로서 의미를 갖는 것은 치열한 자기 고민 때문이다. 말 많은 정치부에서 항상 기사의 균형을 생각하고 외교 관련 기사의 토씨 하나를 놓고도 고민을 놓지 못하는 성미였다. 공연히 이런 곳에서 언급하는 것이 본인에게 누가 될 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손관수를 거론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바로 이 일도 그런 고민의 산물이었다.
지난 4월 총선을 앞둔 어느 날, 손관수 기자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거대 언론조직, 그것도 소속 부서인 정치부를 향해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총선을 앞둔 자기 회사의 보도 경향에 대한 반성과 자세 변화를 촉구하는 이 글은 그야말로 ‘며칠간의 깊은 고민’ 끝에 나온 것이었다. 일부 언론 매체를 통해 알려진 바와 같이 이 글은 ‘정확성과 공정성’이라는 총선 보도준칙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간절한 호소로 가득 차 있었다. 당시 총선을 취재하는 다른 회사 기자들에게도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총선 직후 정치부를 떠나 직전에 근무했던 편집부로 갔다가 다시 며칠만에 보도제작국에 있는 현재의 부서로 옮겼다. 그는 정치부를 떠난 직후 관악산에 올랐다가 만발한 꽃을 바라보면서 왜 꽃이 아름다운가를 생각했다고 한다. 그의 결론은 곧 나의 결론이기도 하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거짓이 없기 때문이다. 거짓없이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 생각을 하면서부터 그는 복권에 당첨된 듯 기뻤다고 한다. 나도 기뻤다. 계속 변하지않는그의 모습을 지켜 볼 수 있을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