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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소외받은 다수

황재운  2000.11.19 19:3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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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운 전북일보 서울본부 기자





10월 10일 오전 11시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새만금사업의 환경친화적 계속 추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있었다.

전북도의회 의장단과 전북지역 시·군의회 의장단협의회, 새만금사업추진 범도민협의회 등 전북에서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총출동했고 전북 출신 국회의원들도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11시에 열릴 예정이던 기자회견은 정작 주인공인 ‘기자’들이 한명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 바람에 12시가 다 돼서야 열렸다.

의원회관 소회의실은 전북지역 일간지 서울주재 기자와 전북에서 올라온 방송사의 카메라, 지역 시민단체 회원과 주민들만이 자리를 지키는 ‘동네 잔치’가 돼버렸다.

이날 기자회견은 새만금사업에 대한 환경단체의 반대운동이 거센 가운데, 사업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는 많은 전북 지역 주민들이 있고, 전북의 대다수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새만금사업을 찬성하고 있다는 것을 중앙 언론에 알리겠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그동안 전북지역 일간지들은 새만금사업에 대해 일방적인 찬성과 옹호의 입장이었지만, 지금 벌어진 환경 논란에서는 국외자의 입장이 돼버렸다.

사업의 계속 추진을 바라는 많은 사람들에게 ‘계속 추진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맥빠진 일이고, 듣는 사람도 얼마나 재미없는 일이겠는가.

그런 사정으로 전북의 새만금사업 찬성론자들은 ‘계속 추진해야 한다’는 자신들의 생각이 초라한 전북지역 언론이 아닌, 막강한 중앙 언론에 실리기를 고대해왔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도 환경단체 등 반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곧잘 대문짝만하게 실리던 것을 생각하며 ‘그 반절의 크기면 황송’하다는 생각으로 열었다고 한다.

하지만 물정에 어두웠던 사람들이 준비해서인지, 제대로 언론사에 알리지 않아서인지, 하여튼 서울의 국회까지 올라와서 개최한 기자회견은 집안잔치로 끝나고 말았다.

점심시간을 넘기면서 들을 사람없는 기자회견을 마친 참석자들은 당초 생각과 달리 초라해져버린 행사때문인지 섭섭함을 거침없이 털어놨다.

한 참석자는 “한쪽 말만 듣고, 다른 쪽의 이야기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는 중앙 언론들에 대해 불매운동이라도 펼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사람은 “환경단체의 낙선운동이 무서워서 새만금사업에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은 다음 총선에서 우리가낙선운동을펼쳐야한다”고 정치권을 겨냥했고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도, 일부의 반대의견이 있다고 줏대없이 오락가락하는 정부는 더 큰 문제”라며 미지근한 정부 태도를 성토했다.

이날 기자회견장에 참석한 새만금사업 찬성론자들은 지금까지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여온 언론과 사회에 대해 이처럼 깊은 소외감과 울분을 토로했다.

이들은 “왜 찬성하는 많은 사람의 목소리는 묻혀버리고, 소수의 반대하는 사람 목소리만 부각되어야 하느냐”고 항변했다.

새만금사업의 옳고 그름과는 상관없이, ‘목소리를 높히는 소수의 강경파’에 대한 ‘조용한 다수(多數)의 볼멘 소리’에는 고개가 끄덕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