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가 회사 짤리는 것 아니야? 지난 8월 한달간 안식월 휴가를 받아 처와 함께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뒤 여러 사람들로부터 걱정반 부러움반으로 들은 이야기다.
올 5월 입사 10년이 넘은 직원들에게 안식월 휴가를 준다는 말이 처음 나오고부터 처와 상의를 했다.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아이들은 어떻게 할까. 여행을 가면 어떨까. 그렇다면 어디로. 이왕 가는거 유럽으로 가자고 처가 제의를 했다. 좋다. 그러면 돈은 어디서 마련하지. 유럽에서 한달을 보내려면 얼마가 들어갈까. 아무리 줄인다 해도 적지않은 돈이 들어갈텐데.
아이들과 함께 할 것인가, 우리 둘만 갈 것인가를 놓고 며칠동안을 망설였다. 결론은 둘만 가기로 했다. 유럽으로 한 달 동안.
아이들을 두고 가기로 한 이유는 이렇다. 돈도 돈이지만 첫째, 초등학교 5학년인 정모는 몰라도 1학년인 준모는 어디 어디를 가도 잘 모를 것 같아서이고, 두 번째는 우리 둘도 말이 설고 물 설은 이국 땅에서 한달 동안은 자신할 수 없는데 아이들까지라니 정말 자신이 없었다. 나는 그래도 회사 출장으로 유럽은 서너번 가보았으나 처는 그야말로 난생 처음이다.
나도 그리 나은 형편도 아니다. 프랑스 파리엔 세 번쯤 가보았으나 에펠탑이나 루브르 박물관에도 단 한번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본 적이 없고 그저 멀찍이서 그곳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이나 찍은 것이 전부이니 자신이 없을 수밖에.
아무리 자신이 없기로 그룹을 지어 가이드를 따라 다니기는 싫었다. 그렇다고 비행기표만 달랑 끊어서 가는 것은 엄두가 나질 않아 잠자리만 예약을 하기로 했다. 런던으로 들어가서 파리에서 나오는 왕복 비행기표하고 유레일 패스 21일치, 그리고 호텔비를 합치니 둘이서 680여 만원이다. 여기다 현지 교통비하고 점심, 저녁값과 입장료 등을 계산해 보니 적지 않은 돈이다. 그래도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또 가보겠는가.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가자. 그동안 모아놓은 것하고 보너스 몇번 안탄 것으로 생각하자고 했다.
그 날부터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첫날 도착하는 런던에서는 어디를 갈까. 히드로 공항에 내리는 시간이 오후 4시이니 호텔에 짐을 풀고 시내 중심가인 피카딜리써커스에서 근사한 저녁을 먹고 런던의 밤거리를 둘이서 거닐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아니다 거기는빼고여기를집어넣자는 등의 일정표를 만들어 갔다.
많이 알려진 곳을 가서 보는 것도 좋지만 가기 전에 이런 저런 자료를 보며-회사 자료실에만도 안내책자가 두툼한 것으로 10여권이 넘고, 인터넷을 뒤져보면 정보는 넘쳐난다-실갱이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결국 런던의 첫날은 저녁 7시 조금 못돼 호텔에 들어가서 저녁도 잊은 채 11시간 여의 비행시간에 지쳐 곯아 떨어져 다음날 아침에야 눈을 떴다. 어쨌든 런던으로 해서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독일,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 파리를 거쳐서 29일 만에 서울로 무사히 돌아왔다.
집에 와서 처가 하는 말. “여보, 6년 된 자동차 제풀에 설 때까지 계속 타고,아파트 평수 넓히려고 아둥바둥할 것 없어요. 돈 모아서 다음엔 아이들 데리고 함께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