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오후 2시 30분 경 서울 용산구 산천동의 한 아파트 입구. 2명의 청년이 킥보드를 밀고 다니며 “킥보드를 그냥 드립니다”라고 외치고 있었다. 다른 한 명의 젊은이는 옥이불과 토스트기, 믹서기 등을 쌓아둔 옆에 서서 물건을 지키고 있었다.
그 앞을 지나가던 한 남자가 청년에게 다가가 물었다. “어디서, 왜 주는 겁니까.” 잠깐 멈칫하던 청년이 대답했다. “중앙일보 지국에서 구독 판촉을 하고 있습니다.”
“나도 중앙일보 다니는데 열심히 하라”며 지나쳤던 행인은 웬지 미심쩍어 집에서 다시 나왔다. “정말 중앙일보 맞습니까.”
그 지나가던 행인은 중앙일보 시민사회연구소의 홍성호 차장. 킥보드를 타던 청년은 알고보니 조선일보 원효지국의 아르바이트 직원이었다.
홍 차장은 옆에 쌓아둔 옥이불과 토스트기, 믹서기 등을 사진기로 찍었다. 한 명의 청년은 도망을 갔다. 파출소에 연락하고 홍 차장이 한 사람의 멱살을 쥔 채 ‘중앙일보 사칭죄’를 따지는 사이에 한 아주머니가 다가왔다.
“저 이거 어제 2개 구독신청 했는데 하나는 물러주세요.” 아주머니가 내민 구독 영수증에는 동아일보 마크가 찍혀있었다. 물건을 쌓아 놓고 다투니까 어제 그 근처에서 킥보드를 나눠주던 동아일보 지국 직원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홍 차장은 그 청년들을 동네 파출소로 넘겼다. “명백히 중앙일보의 명예를 더럽힌 사기 행위”라는 것이다.
그러나 ‘킥보드’에 관한 한 중앙일보의 명예 역시 이들 신문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지난 11일 경 언론노련 등 각 언론단체의 팩스에는 중앙일보 강남 동서초 판매지국이 킥보드를 경품으로 한 판촉활동을 하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신문공정판매총연합회는 이같은 사실을 지국장에게 직접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11일은 한 어린이가 킥보드를 타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숨진 날이기도 했다. 당시 각 신문들은 지면에서 일제히 킥보드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나섰다. 그러나 지국에서는 ‘그 킥보드’를 끼워서 ‘그 신문’을 팔고 있었다. 언론시장의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낸 어느 일요일 오후의 씁쓸한 풍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