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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그·시·절] 손광식<4> 술자리서 ´사채동결 명령´ 정보 입수

재무장관과 심야 단독 인터뷰 가져

손광식  2000.11.19 20: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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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광식 전 경향신문 주필·문화일보 사장





기자는 술을 좋아한다. 나도 술을 좋아했다. 대학 시절 축제 때 퍼마신 막걸리에 인사불성이 되어 손수레에 실려 집에 온 적도 있다. 이 전력이 기자 시절 절도 없는 주법(酒法)의 길로 들어서게 한 단초였는지 모른다.

하긴 기자들 치고 술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다들 무용담 한두개쯤은 가지고 있어 지금도 ‘흘러간 별들’이 모이면 그 시절 에피소드에 열을 올리곤 한다.

기자와 술 하면 J선배가 생각난다. 이 양반은 엄청나게 술을 마셨다. 거의 매일 마셨다. 모주가요, 폭주가였다. 그 술기운 때문인지 취재 스타일도 폭력적이었다. 견습 시절 그를 따라 다닌 적이 있는데 출입처의 관료들은 눈 한번 부라리면 벌벌 기었다.

이 양반의 호연지기(浩然之氣)랄까 객기(客氣)가 현해탄을 건너가 사단을 일으킨 일이 있다. 한창 기자단의 해외 출장이 시작된 60년대 중반 재무부 기자단은 일본 대장성과 중앙은행 초청으로 도쿄를 방문하게 되었다.

긴자(銀座)의 술집에서 회식을 하게되었는데 술이 몇순배 돌고 이런 저런 불만이 터져 고성이 오가더니 급기야는 예의 ‘술상 뒤엎기와 접시 날리기’로 발전했다. 그 선봉이 J선배였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 사태가 벌어지자 우람한 체격을 한 사람들이 하나 둘 요리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집은 바로 ‘도쿄 마찌’의 산하에 있던 요리집이었다.

마찌는 재일교포 정건영으로 야쿠자의 대부 가운데 한 사람이며 한국의 정계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던 인물이었다. 보스의 요리집을 마구 부수는 망나니패가 한국에서 건너 왔으니 야쿠자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이제 기자단은 묵사발이 날 참이었다. 현지 대사관과 금융기관 파견 책임자들은 사태가 심각해지자 장관실에 SOS를 쳤다. 당시 서봉균 재무장관 쪽에서 긴급 연락을 취했다는 설이 있을 정도니 이 폭력사태는 기자가 아니었다면 사회면 기사 감이었다.

어떻든 “모국의 기자 양반들이 객고를 푼 모양”이라는 마찌의 한 마디로 야쿠자들은 물러났다. J선배는 그 후 술로 얻은 병마로 40대에 세상을 떴다.

그런데 이 양반의 마지막이 처연했다. 문병을 간 친구에게 자신의 마지막 소원 하나를 들어달라고 간청하여 소주 한 병을 사오게 했다. 그걸 단숨에 마시고 숨을 거두었다. 폭력적이면서도 문학적 기질이 있었던 그 양반다운죽음에의선택이었다.

갈등과 분노와 저항이 기자들을 술로 가까이 했다면 하나의 변명일지 몰라도 내 가까운 친구들은 모두 잘 마시고 취했다. 그리고 아직 더 살 나이에 훌쩍 훌쩍 떠나가 버렸다.

취재에 술 덕을 본 일도 있다. 1972년 8·3조치 때였다. 사채 동결을 내용으로 하는 전대미문의 대통령 경제명령이 발동된 것은 8월 3일 0시였다.

그 직전 나는 한 재무부 관료와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와는 오랜 술 친구였다. 그가 약간 초조한 빛을 보이는 듯 하더니 오늘밤 중대 발표가 있다며 술을 그만 마시자고 했다. 그러면서 빨리 회사로 가 보라고 했다.

무슨 일이냐고 하니까 경제에 관한 모종의 조치인데 나도 모른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아무래도 긴급 통화개혁이라도 하나 보다 하고 생각했지만 워낙 밤이 깊은데다 술이 너무 취해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런데 이 친구가 자리를 뜨면서 한마디, “장관실로 가 봐” 하는 게 아닌가. 내가 재무부 청사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조치가 발동된 직후였다. 당시 상공부 차관이었던 김용환(현 한국신당 대표)씨가 청사에 나와 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마침 남덕우 재무장관이 장관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그의 옷소매를 잡고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단독 회견을 했다. 작취미성인 상태에서.

단독 회견이라고 해서 뭐 유별난 내용을 특종한 것도 없었다. 그저 혼자 만났다는 형식뿐이었다. 그래도 이튿날 <본지 남장관과 단독 인터뷰>하는 밑 제목이 붙은 기사로 한 건했다는 기분을 냈다.

사실은 이날 남 장관 단독 회견에 특종 기사가 하나 있긴 있었다.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하고 남 장관이 몇 번이고 중얼거린 대목이다 그걸 기민하게 포착, 예컨대 <남 재무, 8·3조치 반대 의사 표명> 제하의 기사를 뽑았더라면 불난리에 줄초상이 났을 것이다. 아무래도 센스와 기질이 모자랐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