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책을 권한다. “당신이 꼭 읽어야 할 내용”이라 한다. “진한 감동을 받을 거”라는 말까지 덧붙인다.
아내의 격찬에 마지못해 “알았어” 답하고 곧 딴청을 부렸다. 그런 내가 못 미더웠던지 아예 책을 펴 눈앞을 가로막는다. ‘혼불‘ 작가 최명희 선생과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된다.
‘혼불과 국어사전’. 최명희 선생이 국립국어연구원에서 강연한 내용을 그 이듬해인 1998년 ‘새국어생활 겨울호’에 전재한 글이었다. 주제를 보는 순간 ‘혼불‘이 ‘국어사전’을 활활 불사르는 듯한 환각에 사로잡힌다. ‘뭔가가 있다’는 직감이 왔다. 혼불과 국어사전, 그리고 교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럼 ‘혼불‘이란 무얼까. 되뇌며 책장을 넘긴다.
사실 처음에는 지루했다. 게다가 작가의 어휘 파괴력이 넘쳐나 바른 어휘 사용을 생명 다루듯 하는 교열기자에게 혼란만 줄 것 같았다. 그래서 ‘혼불‘의 뜻만 대강 챙기고 책을 덮어 버리기로 작정했다. 하지만 비뚤어진 선입견 때문에 혼불 건더기를 건지지 못할 우를 범할 뻔했다. 강연내용을 읽어 갈수록 교열의식이 깨어났기 때문이다.
최명희 선생의 모국어 사랑은 남달랐다. 새로 배운 말이 있으면 즉시 기록한다. 개인 어휘록 사전을 만들어 허리춤에 차고 다닐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사립문 다방’이란 간판 상호를 보며 ‘사립’이 ‘생각하는(思) 마을의 입구(入)’란 뜻일까, 그냥 ‘싸리문’이란 말일까, 사색의 끈을 조여 간다. ‘간치내(동네이름), 아느실(택호)’처럼 정겨운 언어묘사와 ‘아리잠직하다’란 아름다운 우리말을 들춰내 희열을 맛본다.
꽃을 꽃답게 하는 힘이 ‘꽃심(사전에 없음)’인데,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자기 마음을 밝히고 있는 그런 마음, 힘이 바로 ‘꽃심’이란다. ‘그럼, 난 교열 꽃심을 심어야지.’ 마음이 동한다. 또 ‘혼불‘ 책에는 ‘봉울봉울, 까작까작, 덩클덩클’ 등 보지도 못한 의성·의태어들이 나온다.
그중 절에서 들리는 종소리를 ‘강∼강∼’으로 표현했다. ‘바로 이 소리다!’ 우리 동네 산기슭 절간에서 울리는 새벽 종소리를 10년간 들어왔건만, 댕댕, 덩덩, 땡그랑, 뎅그렁…. 아무리 짜 맞춰도 강렬하고 우렁차면서도 은은한 그 새벽 종소리를 표현할 길이 없었다.
‘강∼강∼강’ 어찌 그리 딱 맞아떨어지는지. 최선생은 내마음의 소리를찾아준혼불이다. 그렇다. 최선생은 우리말을 유리알처럼 맑게, 시처럼 아름답게 빛내고 가신 분이다.
정신의 불, 생명의 불, 존재의 불인 ‘혼불‘. ‘강∼강∼강’ 내 교열 꽃심의 울림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