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야당의원이 국회 문화관광위 국정감사에서 발언한 이 한마디야말로 프랑스에 약탈당한 외규장각 도서 반환문제를 가장 적확하게 표현한 말인 듯 싶다.
10월 18일 아침 최근 퇴사한 후배 기자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한상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이 기자회견을 하려다 갑자기 취소했는데 아마 내용은 외규장각 문제이고 형식은 청와대와 관련된 것 같다는 것이었다. 정신문화연구원 관계자들은 함구했다. 한참을 고민하다 서울대 규장각 정옥자 관장한테 전화를 걸어 “규장각 도서 내주기로 하셨다면서요” 하고 쿡 찔렀다. 정 관장은 “얼마 전에 그 사람(한상진)이 다녀갔는데 여기선 못 내주겠다고 했습니다”고 받았다. 쉬쉬하던 외규장각 문제가 순식간에 ‘등가물에 의한 교환과 상호대여 방식’으로 확인된 순간이었다.
데스크에 보고하니 더 정확한 취재원을 확보하라고 지시했다. 외교통산부로 전화를 걸었다. 청와대 소관이라고 말했다. 해고 시절 사귀게 된 청와대 지인들을 포함해 여러 차례 전화가 이어지고 마침내 아셈(ASEM) 준비에 여념이 없는 대통령 의전관계자로부터 “내일(19일) 오전 양국 대통령께서 합의한 외규장각 도서 반환 문제를 공동 발표할 예정”이라는 답변을 얻어냈다.
“그럼 이번엔 조건 없이 돌려 받나요” 재차 물었다. “그냥 돌려주겠습니까. 그 사람들이.” 얼떨결에 내뱉은 말에 당황한 그는 자세한 것은 내일 아침에 발표될 것이라며 얼버무렸다. 나는 이미 알아 낼 것은 다 알아낸 후라 여유가 생겼다. 기사를 마감하고 중앙박물관 프랑스 도예전 기자간담회장으로 향했다. 기사 보안을 위한 일종의 알리바이 만들기였다.
프랑스 문화원 관계자와 파리에서 온 박물관 관계자들에게 외규장각 문제를 물었으나 ‘노 코멘트’라는 코멘트만 들어야 했다.
회사로 돌아온 내게 데스크는 아셈으로 크게 처리되기 어려우니 짧게 쓰라고 지시했다. 애초 2면 게재가 예정됐던 기사는 ‘외규장각 도서 134년만에 환국(還國)’이란 제목과 함께 초판 1면에 2단 상자 기사로 실렸다.
12시가 임박해 집으로 연락이 왔다. 한상진 원장이 정색을 하며 “오보다. 빼달라”고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판단은 데스크의 몫이 아니겠냐 답했지만 “기사는 태어날 때부터 자기 가치를 갖고있다.한번 활자화된 기사를 임의로 손대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던 선배 언론인의 말씀이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다음날인 19일 한상진 원장이 ‘외규장각도서 문제’에 관한 한·불 정상회담 보도자료를 이메일로 보내왔다. 교환 자료가 서울대 규장각 것인지, 정문연 장서각 것인지만 확인되지 않았을 뿐 애초 취재, 보도한 내용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