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30분. 이제는 제법 쌀쌀해진 새벽공기를 가르며 기자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오늘도 소파엔 2명의 기자들이 술 냄새를 풍기며 코를 골고 있다. 전날 밤 술자리에서 쏟아지는 ‘폭탄 세례‘를 온몸으로 막아내다 장렬히 전사(?)한 선수들이다.
경찰서 기자실은 총각 경찰기자들의 ‘살림방’이다. 씻고 먹고 자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 날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집에 들어가기 싫은 총각 기자들은 기자실에 남아 책이나 TV를 보며 시간을 보낸다.
일산에 사는 모 기자는 아예 갈아 입을 옷가지까지 챙겨두고 토요일 밤에도 기자실에서 숙식을 해결해 “데이트도 안하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이런 풍경은 어느 경찰서 기자실이나 별 차이가 없겠지만 서울시내 31개 경찰서를 담당하는 9개 라인 중 종로 라인만의 특색이 있다. 바로 시민단체다.
참여연대와 경실련, 서울YMCA 등 대표적인 시민단체들이 관내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경찰 기자 본연의 임무인 사건·사고 외에 이들 단체가 발표하는 보도자료와 기자회견, 종묘·탑골공원에서 벌어지는 집회를 취재하고 기사화하는 것이 종로 출입기자의 중요한 일과다.
따라서 아침의 시경 보고에는 밤새 관내에서 발생했던 사건·사고보다 시민단체들의 일정을 파악하고 기사가 될 만한 사안들을 골라내는 일이 더욱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하루에도 2∼3건씩 예정된 기자회견과 수시로 쏟아져 들어오는 시민단체의 논평과 성명서, 종묘공원과 탑골공원에서 쉴새없이 벌어지는 각종 단체들의 집회 및 시위 때문에 종로 출입기자들의 하루는 상당히 바쁜 편이다.
요즘은 다른 각종 단체들에게까지 종로서 기자실의 전화번호와 팩스번호가 풀(?)된 탓인지 종로서 관내의 시민단체뿐만 아니라 시내에 있는 민노총과 민주노동당에서부터 환경단체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단체들의 일정과 보도자료가 종로기자실로 쏟아져 들어온다.
시민단체들은 지난 4·13 총선 당시 ‘국민의 손으로 바꿔보자’라는 모토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총선연대 시절 이후 비중 있는 뉴스 메이커로 자리를 확실히 잡았다.
총선연대 시절 언론사당 2∼3명의 기자들이 종로서 기자실에 몰려들어 열띤 취재경쟁을 벌이면서 발생한 엄청난 식대를 감당하느라 기자실비가 바닥나는 피해를 입기도 했지만 어쨌든 총선연대의 활동은국내시민단체의 역사상 큰 획을 긋는 사건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장원 전 녹색연합 사무총장의 성추행 사건이나 총선연대 지역간부의 금품수수 등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한때 활동이 주춤하기도 했었지만 이들 단체들은 주한미군의 환경범죄와 인천신공항 부실공사 폭로에서부터 송자 전 교육부 장관의 자질시비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시민단체들의 활동이 활발해질수록 이들을 비난하는 반대의 목소리도 커지지만 아직은 이들이 법률의 테두리 내에서 보호받지 못한 소외계층의 권익을 대변하고 우리 사회 내 각종 문제점과 부조리들을 타파하는데 할 일이 많다고 보기에 오늘도 종로 출입기자들은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기사를 작성하는데 여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