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눈 내리는 겨울 저녁, 홍은동의 어느 전세방. 27살의 한 기자가 밤 ‘늦게 온 소포’를 받는다. 서툰 글씨로 적힌 발신지는 경남 남해의 어느 절. 주지스님으로 있는 어머니가 보낸 선물이다. 마분지에, 버선에, 해진 내의로 둘둘 싼 포장 속에서 ‘얼굴 내미’는 남해산 유자 아홉 개. 그리고 포장만큼이나 서툴게 써 간 편지 한 장.
“봄 볕치 풀리믄 또 조흔 일도 안 잇것나...어렵더라도 참고 반다시 몸만 성키 추스르라”…
이 젊은 기자는 3년 뒤에 이 ‘늦게 온 소포’ 얘기를 시로 써서 등단을 한다. 그리고 다시 7년 7개월이 지나서 같은 제목의 시집을 낸다.
“그동안 문학 담당 기자가 시집을 내는 게 부담이었습니다. 기자가 낸 시집이라는 이유로 주목받는 건 원치 않았죠.”
고두현 한국경제 기자의 시집 ‘늦게 온 소포’는 그래서 ‘늦게 낸 시집’이다.
고 기자는 올 6월에 문학담당에서 출판분야로 옮기고 나서야 자신의 시들을 책으로 묶었다. 문학담당 기자 생활만 8년. 9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이후 사내에서 그는 ‘시인이 된 기자’가 아니라 ‘기자가 된 시인’이었다.
“출판사에서 시집 앞장에 사인을 해서 신문사에 보내라더군요. 하지 않았어요. 제 시를 제대로 평가받고 싶었죠.”
올 가을 대부분의 문학담당 기자들은 ‘고두현 시인’을 지면에서 인정했다. 한 문학담당 기자는 그의 시를 두고 “젊은 시인치고 드물게도 차분히 엮어 낸 서정”이라고 평한다.
그의 시는 고향과 어머니, 아버지를 노래한다.
만주에서 독립 운동의 ‘언저리를 맴돌았다’는 그의 아버지는 해방 고국에서 ‘한 평 못 차는 잔디 풀밭’에 누울 때까지 자본주의에 쫓겨 살았다. 한 그루만 있으면 대학교육까지 시킨다는 남해 유자 나무 하나 갖지 못한 그의 어머니는 말년에 불교에 귀의했다.
그는 그런 아버지를 ‘땅 이야기’에서 애도하고 그런 어머니를 ‘늦게 온 소포’에서 그리워한다. 그래서일까, 어쩐지 그의 말 속에도 유자냄새가 난다. 그의 어머니는 재작년에 작고했다.
“어머니는 요즘도 가끔 꿈에 나타나 유자 껍질처럼 투박한 손으로 등을 두드려주세요. 유자 향기처럼 오래가는 시를 쓰라고 격려해주시는 거죠”
며칠 전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박람회에 취재를 다녀 온 그는 “유럽 공기가 감기 걸리기 딱 좋더라”며 인터뷰 내내 기침을 했다. “감기에는 유자가 좋지 않느냐”는질문이 짖궂었을까. 한탕 너털 웃음 끝에 그의 입가에 쓸쓸한 미소가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