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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신문개혁과 구독료

임항  2000.12.09 14:3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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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항 국민일보 국제부 차장





2년 전 인도 서남부 해안의 오지에 엄청난 해일이 닥쳐 그곳 염전노동자들이 떼죽음을 당한 일이 있었다. 한국 언론들은 못 사는 나라의 뉴스를 무시하는 버릇 때문에 이 소식을 1단기사로 취급하거나 다루지 않았다. 일기예보는 커녕 재해경보조차 지각 발동했던 인도 정부는 사망자 수 통계도 제대로 내놓지 못했다.

그로부터 약 보름이 지난 후 워싱턴포스트가 실은 단편소설 한권 분량의 르포기사를 통해서야 이 끔직한 재앙의 전모가 밝혀졌다. 무려 1만명 이상이 숨진 이 자연재해는 먹고 살 수단이 없어서 멀리 떨어진 염전에까지 몰려든 노동자의 딱한 사정에 의해 그 참혹도가 가중됐다. 가족들이 너무 멀리 떨어진 곳에 살기 때문에 참사 후 열흘 이상이 지나도록 수습되지 않은 시신들이 전봇대 위에, 지붕 위에 그대로 널린 채 썩어가고 있다는 묘사들에서는 소름이 끼쳤다.

워싱턴포스트의 그 보도는 권위지들이 어떻게 그 명성을 유지해 가는지를 단편적으로나마 보여줬다.

이런 권위지들은 많은 돈을 들여 전세계에서 해외 특파원망을 운영한다. 잘 알다시피 우리나라 신문들은 해외 특파원 파견 등 이런 국제화 측면에서도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기 부끄러운 수준이다. 최근 사정이 나은 신문사를 중심으로 조금씩 개선되고는 있지만, 대부분 인기 없는 외신 보도에 투자를 꺼리는 풍토는 여전하다.

신문 부수로만 보면 모두 전국지인 우리나라 신문들이 세계 각국 권위지들보다 적지 않거나 오히려 더 많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경우 전세계 발행부수는 50만부가 안 되지만 상당한 흑자를 내고 있다. 수지 맞추기의 비결은 일단 비싼 구독료다. 이 신문 1부값은 서울에서 2천원, 일본에서 6백엔이다. 뉴욕타임스의 한달 구독료는 주말판까지 합쳐 약 4만원이고, 강제징수되는 BBC 시청료는 월 3만원이다.

나는 우리나라 신문업계에서 개혁이 안 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싼 신문값에 있다고 본다.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은 신문들이 일종의 변형된 투매담합을 이끌고, 심지어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염가판매를 주도하는 신문사들은 짭짤한 광고수입으로 판매적자를 메우면서 경쟁업체나 신규시장 진입자가 수지를 맞출 가능성을 구조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모든 신문들은 광고 의존도가 크게 높아져 독자를 위한 신문이 아니라 큰 광고주, 즉 대기업을 위한신문이 되고 말았다.

시민단체들은 우리나라 언론의 반노동자적 논조를 비판하고, 사주 일가의 과도한 지분의 분산, 언론기업의 공개 등을 요구한다. 그것도 물론 개혁의 한 대안일 수 있겠지만, 위헌 시비 등으로 법률적으로도 어렵고, 허약한 정부가 그것을 강제할 힘도 없다. 그에 앞서 소유구조가 분산돼 있다고 해서 독립적이고 질 높은 신문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시장구조를 개혁하는 게 급선무다. 무분별한 판촉경쟁을 신문내용과 형식의 다양성을 위한 경쟁으로 전환해야 한다. 시장을 고급지, 폭로 위주의 신문 등으로 분할해야 한다. 그러려면 신문 값을 올리는 것이 첫걸음이다. 특정 독자층을 겨냥한 개성 있는 신문을 잘 만들어야 할 뿐 아니라, 독자들이 비싼 돈을 주고 그 신문을 사 줘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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