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5일 200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전국에 걸쳐 실시되었다. 정부예산만도 174억여원이 들었으며 공무원은 물론 일반 기업체의 출근 시간이 조정되고 비행기 이착륙이 통제될 정도의 중대한 국가적 큰 일이며 85만여명의 응시자들 또한 6년간 혹은 12년간 쌓아온 자신의 실력을 최대한 발휘하려고 온 힘과 정성을 기울였다.
이런 일에 언론이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다. EBS 교육방송은 그날 저녁 8시부터 3시간여 동안 특별방송을 편성하여 정답을 알리고 해설을 하였으며, 다음 날 아침 거의 모든 신문은 일제히 깨알같은 글씨로 광고도 없이 8∼10면에 걸쳐 문제와 모범답안을 실었다(이렇게 공개되는 문제를 수험생이 갖고 가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뭘까? 이 때문에 얼마나 많은 종이와 잉크가 낭비되고 쓰레기가 양산되는지 이제는 한 번 생각해볼 일이다).
문제가 지난해보다 어려워 상위 50% 수험생의 평균이 3∼5점 정도 낮아질 것이라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원장 박도순)의 예상을 시작으로 수능에 관한 소식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그 뉴스원이 주로 중앙교육진흥연구소, 종로학원, 대성학원, 고려학력평가연구소 등 전국규모의 입시기관들이다. 채 이틀도 지나지 않아 그들은 대략 6만여명을 대상으로 가채점을 한 결과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라며 구체적 대학지원 전략을 보도자료로 내놓는다. 문제는 영리기관인 그들의 분석을 언론기관이 종합해 24만여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라며, ‘380점 이상 2만8천명 웃돌 듯’, ‘수능 변별력 상실’, ‘실수가 당락좌우’, ‘학교마다 진학지도 비상’ 등의 선정적 제목을 뽑아 그렇지 않아도 불안한 입시생과 학부모의 마음을 흔드는 데 있다.
우선 숫자의 마술에 대한 문제다. 85만 응시생 중 24만을 표본으로 조사했다면 대단한 일이다. 엄청난 신뢰도를 확보할 수 있는 기초가 충분한 셈이다. 그러나 각 기관이 조사했다고 발표한 표본의 숫자를 더한다는 것은 그럴 듯 하지만 잘못된 분석이다. 예년의 그들 기관의 예측 신빙성이 어떠했는지 검증도 없이(각 대학이 발표하지 않아 근본적으로 확인불가) 또 보도자료 어디에도 구체적 조사대상이나 방법을 밝히지 않아 문제가 있는 자료임에도 이를 바탕으로 기사를 낸다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일이다. 잠시 기다리면 절로 명확해질 일인 것을,그리고 그때 가서 문제를 지적해도 늦지 않을 것을 이렇게 앞서 판을 벌임으로써 우리에게 남는 것이 무엇일까.
다음으로 변별력 상실에 대한 문제다. 380점 이상 최상위권이 인문계 1만2458명 자연계 1만2206명 등 마치 채점결과가 다 나온 것처럼 한자리 숫자까지 들이대는 만용 앞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지만 입시의 당락을 결정짓는 것은 수능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다. 논술, 면접, 학생부, 가중치, 반영비율, 수행평가, 사회봉사, 교차지원, 특기 등 실로 우리는 그 동안 이렇게 해야 학교가 정상화된다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였던가? 그런데 이제 와서 다시 수능점수에 의해 당락이 결정되어야 바람직한 일인 것처럼, 또 “가군 대학에는 신중히 합격위주로 선택하고 나군이나 다군에는 소신껏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식의 작전지시를 내리는가 하면,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 이유를 빌미로 ‘수능의 이원화’를 요구하는 서울대의 주장이나 지필고사를 바라는 소위 명문사립대의 요구를 기사화 하는 일은 사회의 공기로서 무책임한 일이다.
끝으로 지속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문제를 물밀 듯이 제기하고서는 언제 그랬냐 싶게 빠져나가는 언론의 행태를 지적하고 싶다. 그러다 보니 의제를 설정하는 방향과 내용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다. 수능점수만을 기준으로 선발하는 특차가 4년제 대학 전체의 37%에 가까운 인원을 뽑는 구조적 문제, 어떠한 제도로도 해결될 수 없는 대학 진학 희망자들의 초과수요를 좋은 제도가 나오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 것처럼 호도하는 일, 당연히 평가원이 해야할 일을 사설 입시기관이 주도하는 데 따른 문제, 만점을 받고도 정말 입시에 실패할지도 모르는 편중현상, 반 이상의 입시생에게 닥친 내년 3월까지의 긴 교육공백, 작은 실수가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 수능시험 제도의 문제 등 정말로 우리가 길게 그리고 깊게 연구해야할 과제는 이런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