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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이산가족 상봉 취재 현장 이모저모

취재진 800여명..1차 상봉 절반 수준/어지러운 국내 정세.인지도 하락 반영한 듯

김현  2000.12.0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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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보다 규모·열기 식어

○…이번 이산가족 상봉은 1차에 비해 취재 규모와 열기가 많이 식은 모습. 1차 상봉 때 국내 언론만 150여 매체에서 1500여 명의 기자들이 취재에 나선 반면 이번에는 80여 매체 810여 명의 취재진이 ID카드를 발급 받았다. 한 기자는 이번 상봉의 취재 지원이 낮았던 이유로 두 번째 방문이라는 점과 방문 인사의 인지도가 1차에 비해 떨어진다는 점, 그리고 국내 정세를 꼽았다. 이 기자는 각 신문의 1면 톱을 예로 들며 “대부분이 진승현이고 경제 신문은 김석기, 스포츠신문은 백지영인데 이산가족 취재가 1차 때만 하겠냐”고 말했다.



경쟁 줄자 마찰도 줄어

○…차분한 취재 분위기 속에서 경쟁으로 인한 마찰도 줄어들었다. 1차 때 논란이 되었던 풀 기자단 구성은 3인 이상 풀 기자가 들어갈 경우 연합뉴스 기자를 반드시 포함하도록 했다. 첫 상봉에서 포토라인 위치를 정하기 위해 제비뽑기를 했던 사진기자들도 이번에는 현장에서 ‘맡은 자리’를 제 위치로 정했다. 낮은 취재 열기를 반영하듯 만찬이 있던 1일 저녁 롯데월드호텔 지하 1층 프레스센터 옆 술집에는 적잖은 ‘기자 손님’이 다녀갔다. 이 술집 종업원은 “9시경부터 11시까지 파란색 ID카드를 멘 4~7명의 손님들이 5~6 테이블 다녀갔다”고 말했다.



외신기자들 인원 배정 불만

○…국내 기자단 구성에는 잡음이 적었지만 일부 외신 사진기자들은 30일 오후 ID카드를 국정홍보처에 반납하고 취재를 철수하기도 했다. 씨파 프레스 등 5명의 외신 사진기자 중 한 기자는 “외신 기자, 그 중에서도 사진기자에 적은 인원을 배정하는 것은 고질적인 문제제기였다”면서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국정홍보처 관계자는 “이번에는 방한 외신기자들을 모두 접촉해서 인원을 산정했으며 상주 외신 기자는 외신기자클럽에서 자체 구성했다”고 말했다. 30일 전체 상봉에는 100명의 풀 기자들 중 외신 기자 30명이 포함됐으며 지난 1차 상봉 때는 한국을 찾은 외신기자들 일부가 풀 기자단에 끼지 못해 현장 취재가 어렵자 되돌아가기도 했다.



한달전부터 서류 절차 밟아

○…지난 1차 때 방한 취재를 왔다가 되돌아갔던 독일 ARD 방송국은 이번 상봉에 한 달 전부터 서류 절차를 거쳐 기획 취재를 오기도. 당초 이 방송국은 저녁 메인 뉴스에서 10분짜리 특파원 리포트 형식으로 한 가족의 상봉 장면을 집중 조명할 계획이었으나계약사인 MBC에서 9시 30분 이전에는 화면 제공이 어렵다는 답변이 있자 곧바로 유로비전의 화면을 받아 짤막한 단신으로 처리했다. 이 방송국의 서울 특파원은 “이산가족 상봉의 감동은 10차, 20차까지 간다해도 여전하겠지만 외국방송 입장에서는 한번의 관심으로도 충분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료 경쟁으로 이산가족`씁쓸

○…30일 저녁 센트럴시티에서 있은 첫 상봉에서 리석균 씨는 어머니의 시집과 가족사진을 보며 즉흥시를 읊어 언론의 관심을 모았다. 상봉장에서 뒤늦게 이 사실을 듣고 모여든 기자들은 즉흥시를 물었지만 가족들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답하자 리씨 모친의 시집과 친필 서한 등의 ‘자료 확보’에 나서는 모습. “빌려달라, 복사하자”는 기자들의 부탁을 들어주던 가족들은 결국 상봉장에서 맨 마지막까지 자리를 뜨지 못하다가 주최측의 재촉을 받자 말없이 시집과 일기장 등을 챙겨 굳은 표정으로 상봉장을 나갔다. 한 기자는 “취재 전반의 분위기는 차분해졌다지만 현장에서의 취재 경쟁은 기자들의 생리 아니냐”고 되묻는 한편 “하지만 취재가 상봉에 방해가 되거나 불쾌감을 줘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형·아우’부르며 우정 과시

○…30일 만찬에서 가족들이 식사를 하며 취재가 잠시 한가해지자 몇 차례의 취재현장에서 얼굴을 익힌 남북의 기자들은 한 쪽에 모여 담배를 피우고 과일을 들며 환담을 나누기도. 북측의 기자가 “어, 또 만났네. 출입처는 어디다 두고 자꾸 나오나”라고 농담을 건네는가 하면 한 남측 기자가 “남북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는데 기자 교류가 별로 없다”고 말하자 북측에서 “이제 좀 풀리갔지, 뭐”라고 응답하기도. 한 방송국 송출담당자는 1일 만찬장 입구에서 북측의 최영화, 김일연 기자와 마주치자 얼굴을 쓰다듬으며 “형님“이라고 불렀으며 최 기자는 “밥은 먹었네”라며 식사 안부를 건네는 우정을 과시하기도.



“기자가 싫어”농담 건네기도

○…낯이 익어 친해지기는 남측 기자와 북측 관계자들도 마찬가지. 최승철 북측 방문단장은 30일 남측 기자들이 3차 상봉 일정과 장충식 한적총재 등의 문제에 대해 묻자 웃으며 “나는 기자들이 싫어”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올해 북측 기자들과 4차례 접촉을 했다는 한 기자는 “이런 얘기들은 낯이 익고 친해지니까 할 수 있는 얘기들”이라며 “처음 만났을 때보다 많이부드러워진 북측 기자들을 보면서 무엇보다 잦은 만남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TV뉴스 보며 멘트 받아적어

○…1일 오전 숙소에서 이뤄진 개별상봉에서는 내·외신기자 9명으로 풀 단을 구성했으나 방이 비좁고 상봉에 방해가 되자 오후부터는 5명으로 기자 수를 줄였다. 통일부 관계자는 “가족까지 합치면 거의 20명이 한 방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라 기자 수를 조정했다”고 말했다. 또 30일 센트럴시티 6층 상봉장 풀기자단에 들어가지 못한 몇몇 신문기자들은 5층 상봉가족단 교육장에서 TV뉴스를 보며 가족들의 멘트를 받아적었으나 SBS를 보던 몇몇 기자들은 저녁 8시 40분경 갑자기 화면이 날씨 프로그램으로 바뀌자 빈축을 던지기도 했다.



북측 조선일보 거부감 여전

○…조선일보에 대한 북측의 거부감은 이번 방문단에게서도 드러났다. 1일 개별상봉에서 남쪽의 아버지를 만난 권순호씨는 매일경제, KBS에 이어 조선일보 기자의 소개를 받자 “조선일보의 취재를 거부한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이 방문자는 “우리들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쓰는 조선일보는 싫다”며 “나도 취재를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들은 남측 관계자들의 설득으로 조선일보 기자의 현장 입회는 허락했지만 끝내 질문은 받지 않겠다고 해 다른 기자들까지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기도. 한편 이 날 북측의 로승득씨도 개별 상봉 시작에 앞서 “조선일보 기자는 나가시라”고 말했는데 정작 이 자리에는 조선일보 기자가 없어 잠시 머쓱한 분위기.



“우리 기자라면 때려주겠다”

○…1일 오후 개별상봉에서 운보 김기창 화백의 병실을 찾은 동생 기만씨의 상봉 현장에도 남북의 기자들이 붐벼. 이 자리에서 남측 기자들이 취재 경쟁에 나서자 북측의 한 관계자는 “말을 너무 안 듣는다, 우리 기자들 같으면 때려주기라도 했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남측의 관계자는 “아무리 방문 자격이라지만 우리 기자들도 한마디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나타냈다. 한 기자는 “북측 인솔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이 입원실 옆에 있는 대기실로 빠져나오며 이같은 말을 했다”며 “아주 농담같지는 않았지만 아주 진지하지도 않아 그냥 넘어가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북측 관계자들이 불쾌해했던 것은 사실이나 카메라 기자까지 남측 기자가 5명이었는데 취재 경쟁이라는 말은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이 날 김기창-기만 형제 상봉 취재는 원래 남측기자를 9명으로 한 풀단을 구성했으나 북측 취재 인력을 감안해 5명으로 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