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에 있어 정부와 언론의 보도협조는 어떻게 가능할까. 또 이같은 협조는 언론의 사실보도 원칙과 어떤 경계선을 그어야 할까.
통일부가 건 엠바고를 통일부 차관이 파기한 납북자 상봉 보도를 둘러싸고 이같은 문제제기가 일고 있다.
통일부가 기자실에 엠바고를 요청한 것은 지난 11월 초. 2차 이산가족 방북자 중 납북어부 강희근(49)씨와 어머니 김삼례(73)씨의 상봉을 보도하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이유는 납북자 문제에 대한 북측의 입장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언론의 사전 보도가 북측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
통일부 기자실은 기한도 정해지지 않은 엠바고를 받아들였다. 한 통일부 기자는 “기자실 회의 결과 상봉자의 인권을 생각할 때 엠바고를 받아들이자는 것으로 큰 마찰 없이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통일부 기자들은 납북자 상봉이 끝난 뒤 성과를 평가하면서 엠바고 기한을 다시 정하기로 하고 소속 언론사의 다른 부서에도 이 사항을 지켜줄 것을 전달했다.
엠바고 파기의 발단은 지난 1일 국회 예결위 보고. 양영식 통일부 차관은 이 자리에서 “이산가족 상봉단에 납북어부 1명이 포함돼 있다는 데 사실이냐”는 한나라당 이재창 의원의 질문에 “확인도 부인도 할 수 없다”고 답변함으로써 사실상 납북자 방북 상봉 사실을 시인했다.
연합뉴스 국회 출입기자는 이날 밤 10시 40분 경 양 차관의 발언을 보도했다. 이 때문에 통일부 기자실은 4일 오전 회의를 열어 연합뉴스 통일부 기자 2명에게 1개월 출입정지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이 엠바고는 다음 날인 2일 아침 북한의 평양방송이 상봉 소식을 보도하면서 완전히 깨졌다. 평양방송이 보도를 하자 각 신문도 4일자부터 일제히 이들 모자의 상봉을 다뤘다. 그러나 ‘어설프게’ 깨져버린 엠바고에 대한 책임은 양 차관에 대한 반발로 이어졌다.
기자들은 8일 오전 기자실 문에 ‘양영식 차관 출입금지’라고 써 붙인채 공식 해명을 요구하고 있다. 기자실 간사인 김호성 YTN 기자는 연합뉴스 기자의 출입정지 결정을 “읍참마속의 심정”에 빗대며 “통일부측은 신의를 저버렸으면서 사후 해명에까지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한 통일부 기자는 “통일부에서 요청 해놓고서 차관이 국회에서 발언을 할 수 있느냐”며 “언론의 남북 문제 보도에 대한 정부의 낮은 고민 수준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단에 엠바고를걸었으면 정치권에 사전 설명이 있었거나 국회 답변에서 서면 또는 비공개 답변을 요구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양영식 차관은 이에 대해 “공직에 있는 사람으로서 거짓을 말할 수 없었다”면서 “기자들에게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엠바고 유지에 대한 중간입장을 11일 기자들에게 밝힐 예정이다.
이번 소동은 정부-언론의 엠바고 신뢰문제와 함께 남북 문제의 보도 원칙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도 함께 낳고 있다.
한 기자는 “북한 기자들이 30일 납북자 상봉에 취재 열기를 보인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그 날 하루는 기사 작성보다 거의 종일 기자실 회의가 열렸다”면서 “남북이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통일부 기자들은 언론의 보도사명이라는 원칙과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보도 사이에서 고민스러울 때가 많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이 기자는 “30일 회의에서는 북측이 공개해서 깨지느니 우리가 먼저 엠바고를 깨자는 얘기도 나왔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자는 “남북 관계가 변하고 있는 만큼 언론의 남북 문제 보도에도 어떤 원칙을 세울 필요가 있으며 정부의 대언론 공조도 보다 신중해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