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김대중 대통령이 민주당 총재로서 총재특보단과 만나 밝힌 각오다. 이같은 발언의 행간엔 최근의 지지도 하락은 정부의 개혁 드라이브 때문이라는 대통령의 상황 인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얼핏, 낮은 지지도를 개혁에 대한 저항 탓으로 돌리려는 듯한 오만마저 느껴진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식상 이른바 ‘개혁 피로감’이 정부가 개혁을 밀어붙였기 때문인가? 개혁의 방법론과 개혁 주체의 도덕성에 중대한 흠결이 있었기 때문은 아닌가? “당이 시스템이 아니라 사선에 의해 움직이다 보니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며 최근 실세인 권노갑 최고위원의 2선 후퇴를 요구한 민주당 비동교동계의 칼끝은 가신 정치를 겨누고 있다. 권씨와 한화갑 최고위원, 김옥두 민주당 사무총장, 남궁진 청와대 정무수석, 최재승·윤철상 민주당 전국구 의원 등은 15대 대통령선거전의 열기가 뜨겁던 97년 9월 김대중 당시 국민회의 총재가 집권하면 “청와대와 정부의 정무직을 포함해 어떤 주요 임명직에도 결코 나서지 않겠다”고 공개 결의한 자타가 공인하는 DJ의 가신들이다. 이들은 그 때 “DJ가 당선되면 그 가신들이 김영삼 대통령의 가신들이 저지른 부정부패를 되풀이할 것이라는 일부 국민들의 우려를 직시해 이렇게 결의한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3년, 당내에서 좌장격인 권씨의 행보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한빛은행 불법대출 사건, ‘정현준 게이트’ ‘진승현 게이트’ 등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권력형 부패 스캔들마다 가신 그룹의 연루설이 나도는 것에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입만 열면 개혁을 외치던 개혁 주체들이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치를 떨고 있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한반도 평화정착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탄 김 대통령의 지지도는 3년 전 15대 대통령선거 당시 득표율 40.3%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집권 중반 YS 지지도의 절반을 겨우 웃도는 수준이다. 지지기반인 호남을 제외하면 전국적으로는 이미 10% 미만이라는 분석도 있다.
문제는 경제다. 경제를 살려내야 한다. 정치도 경제를 살리기 위한 정치가 돼야 한다. 국민들이, 대통령의 측근이 부패 스캔들에 연루돼 있다고 믿으면 개혁은 이미 물 건너 간 것이다. 정치는 국민들이 어떻게 믿느냐가중요하기 때문이다. 국민적 합의 없이는 개혁도, 경제 살리기도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경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선 경제를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한다. 대통령은 경제팀의 확실한 버팀목이자 정치바람을 막아 주는 방패막이가 되어야 한다. 개발 연대의 압축성장을 박정희 정권에 참여한 테크노크라트들의 공으로 돌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강의 기적’은 누가 뭐래도 박정희의 치적이다. 경제장관들이 성공해야 성공한 경제 대통령도 나올 수 있다.